기나긴 이별, 레이먼드 챈들러, 북하우스, 2005

 

 

 

 

 

 

 

 

물론 그 여자 말이 전적으로 옳고, 내 말은 전적으로 틀렸다. 그렇지만 나는 틀렸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나머지 자초지종은 신문 사회면에서 볼 수 있는 그렇고 그런 속물적인 칼럼에서 읽었다. 나는 그런 기사를 자주 읽지는 않는 편이지만, 혐오할 만한 일이 다 떨어졌을 때 읽곤 한다.

 

 

 

나는 신문을 구석에 던져버리고 TV를 켰다. 사회면의 개가 토한 것을 보고 나니, 레슬러까지도 고상해 보였다. 그렇지만 그 기사들은 모두 사실일 것이다. 사회면에서는 사실을 쓰는 편이 나을 테니까.

 

 

 

어느 눅눅한 3월의 저녁 5시였다. 그는 변한 듯 보였다. 나이가 더 들어 보였고, 생생한 맨정신에, 엄숙했고 아름다우리만큼 침착했다. 그는 주먹을 맞아도 충격을 덜 받는 법을 배운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부자요. 돈이 이렇게 많은데 행복까지 바랄 필요가 있겠습니까?

 

 

 

“…랜디와 나, 그리고 다른 친구 하나가 언젠가 곤경에 빠진 적이 있었죠. 그래서 우리 사이에 일종의 유대감이 생긴 겁니다.

그럼 왜 필요할 때 그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았소?

그는 술을 다 마셔버리고 웨이터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 친구는 거절하지 못하니까요.

 

 

 

그들은 경계하고 뭔가를 기다리는 눈, 참을성 있고 조심하는 눈, 냉정하고 상대방을 경멸하는 눈, 경찰의 눈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경찰학교 졸업식장에서 그런 눈을 부여받는다.

 

 

 

그의 턱 근육이 불쑥 튀어나왔다. 눈은 더러운 얼음 같았다.

 

 

 

그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이쪽에서도 아무 말 하지 않는다. 할 말이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는 책상 위에 손을 올려놓고, 엎어놓은 서류를 끌어당겨 뒤집은 뒤 서명했다. 언제나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쓸 때는 잘 알아볼 수 있다. 움직임이 독특하기 때문이다.

 

 

 

메넨데스가 놀랐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겉으로 드러난 반응은 주말에 해치워버린 결혼식 반지에 씌운 금만큼이나 희미한 것이었다.

 

 

 

수십억 달러의 재산이 있는 남자라면 하인, 경호원, 비서, 변호사, 말 잘 듣는 간부들이 막처럼 에워싼 뒤에 숨어서 기이한 삶을 산다고 해도 괜찮다. 추측컨대, 그 사람들도 먹고, 자고, 이발도 하고, 옷도 입기는 할 것이다. 그렇지만 전혀 알 수는 없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읽고 들은 모든 것은 일단의 홍보 담당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며, 이들은 많은 돈을 받고 소독한 주사바늘처럼 뭔가 단순하고 깨끗하고 날카로운, 편리한 인격을 만들어내고 유지하는 일을 한다.

 

 

 

스스로 만든 함정만큼 치명적인 함정은 없다.

 

 

 

그는 손을 뻗어 여자의 허벅지를 두드렸다. 여자는 비상용 소화 양동이처럼 입을 활짝 벌리고 웃었다.

 

 

 

바의 의자에 앉아서 바텐더와 이야기하는 슬픈 남자도 있었다. 바텐더는 유리잔을 닦으며,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고 애쓸 때 으레 짓는 꾸민 미소를 띠고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이 결코 모든 이야기를 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오랜 경찰 생활에서 내가 확실히 배운 한 가지는, 감옥에 가는 건 꼭 잘못을 저질러서가 아니라는 거야. 법정에 갔을 때 어떻게 보이느냐에 달려 있는 거지. 그럼 잘 있으라고.

 

 

 

텅 빈 수영장 위의 늘어진 다이빙대는 피곤해 보였다. 표면을 씌운 매트는 너덜너덜해져 있었고 금속 거치대는 녹이 슬어 벗겨진 상태였다.

 

 

 

나는 질겅질겅 씹힌 실오라기 같은 기분으로 차를 돌려 할리우드로 돌아왔다.

 

 

 

나는 오늘도 미칠 것 같은 하루가 되리라 짐작했다. 누구에게나 그런 날이 있다. 헐렁해진 바퀴 같은 인간들, 껌을 붙여 머리가 돌아가는 것을 멈춰놓은 듯한 게으름뱅이, 도토리를 못 찾겠다는 다람쥐들, 항상 톱니바퀴 하나를 빼놓고 조립한 기계공 외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날.

 

 

 

그가 문을 열어주자 로링 부인은 올라탔다. 그는 마치 보석상자의 뚜껑을 내려놓는 듯한 태도로 차문을 닫았다. 그는 차 뒤로 돌아가 운전석에 앉았다.

 

 

 

웨이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조용히 말했다.

새벽에 피스톨과 커피를 들고 만날까?

 

 

 

이제 손님들이 집에서 떠나 저녁 공기 속으로 새어나가고 있었다. 목소리들은 희미해졌고, 차에는 시동이 걸렸으며, 작별 인사가 고무공처럼 여기저기에서 튀어다녔다.

 

 

 

무례하게 굴지는 않았습니다. 아주 이성적이었어요. 그 사람은 자기 자신을 오래 냉정히 들여다보고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낼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건 흔한 재능은 아니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들이 가진 적이 없는 위엄을 지키기 위해 일생 동안 가진 에너지의 반을 소진하면서 살아갑니다. 안녕히, 웨이드 부인.

 

 

 

나는 그처럼 내 자신에 대해서 아름다운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니까. 나를 사랑하는 것의 가장 좋은 점은 경쟁자가 없다는 거지.

 

 

 

끊임없이 언론의 자유를 달라고 울어대는 것은 몇 가지 명예로운 경우만 제외하고는 스캔들이나, 범죄, 섹스, 선정주의, 증오, 빈정대는 말, 그리고 정치적, 경제적 선동을 싸구려로 팔아넘길 수 있는 자유를 달라는 말이나 다름없지.

 

 

 

어려운 일이다, 경찰 노릇을 한다는 것은. 누구의 비위를 맞춰야 안전한지 절대로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 타자 용지로 오백 페이지를 써놨네. 아마 십만 단어는 넘게 썼을 거야. 내 책은 길어. 대중은 긴 책을 좋아하지. 바보 같은 대중은 페이지수가 많으면 황금처럼 좋은 내용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

 

 

 

아무 느낌도 없다는 말은 정확히 맞았다. 나는 별들 사이의 공간처럼 텅 비었고 공허했다.

 

 

 

현관 위에 붙어 있는 뻔뻔스러운 간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남성 전용. 여성과 개는 입장 불가. 내부의 서비스도 그 정도 수준이었다.

 

 

 

법은 판사라고 하는 법률가들 앞에서 또다른 법률가들이 토막내기 위해, 다른 판사들이 첫번째 판결이 틀렸다고 말하기 위해, 대법원에서는 두번째 판결이 틀렸다고 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죽음을 사랑하는 살인자들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살인은 막연한 형태의 자살과도 같다.

 

 

 

미국 사람들은 빵을 구워서 이쑤시개 두 개로 꽂아놓고 옆으로 양상치가 비어져나오게 만든 것이면 무엇이든 먹는다. 그것도 시든 양상치면 더 좋고.

 

 

 

신문기자 일이 좌절스러운 게 그런 거죠. 사실을 많이 알기는 아는데 쓸 수가 없으니까요.

 

 

 

백 명 중 두 명에게는 결혼이 멋진 거겠지. 나머지는 그저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는 거고. 이십 년 후에 남자들에게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차고에 있는 작업대뿐이란 말이오. 미국 처녀들은 근사하지만 미국 부인들은 너무나 많은 영역을 침범하려고 한단 말이오. 그 외에도.…….

 

 

 

나는 계단을 도로 올라가 침실로 들어간 뒤 침대를 다 벗겨내고 다시 정돈했다. 베개 밑에 긴 검은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었다. 내 뱃속 깊은 곳에 납덩이가 들어있는 기분이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그런 상황에 어울리는 표현을 가지고 있다. 그 녀석들은 모든 일에 어울리는 표현을 가지고 있고, 항상 맞는 말만 한다.

 

이별을 말하는 것은 조금씩 죽어가는 것이다.

 

 

 

엘 오노르 노 세 무에베 데 라도 코로 모스 콘그레호스. 이 말은 명예는 게처럼 옆걸음질을 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세뇨르.

 

 

 

자넨 도덕적인 패배자야.

 

 

 

나는 그들 중 누구도 다시 보지 못했다. 경찰들을 빼고는. 경찰들과 이별하는 방법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나는 이것을 내가 원하던 대로 썼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그럴 수 있게 됐으니까요.

어떤 스타일로 글을 쓰는데 그것이 계속 모방되고 심지어 표절하는 이까지 있을 때, 마치 나 자신이 나를 흉내 내는 이들을 흉내 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하는 시기가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따라올 수 없는 곳으로 가야 하지요. 위험은 독자들도 따라올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         레이먼드 챈들러, 1952년 「기나긴 이별」 원고를 뉴욕 출판사에 보내며 쓴 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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