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의 내력, 오쿠이즈미 히카루, 문학동네, 2007
극도의 영양실조와 아메바성 이질로 인한 체력 저하로 마치 철사로 만든 뼈대에 포장지를 씌운 듯한 얼굴에 눈만 민첩하게 움직이던 남자는 우엉 줄기처럼 말라비틀어진 손가락으로 마나세에게 옆에 있는 돌을 집어 보이며 이것은 녹색 처트라는 돌이야, 라고 말했다.
과거의 기억이란 곧 사건의 의미가 풍경으로 변한 것이어서,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사람에게 미래보다 과거가 더 다양한 것은 그가 과거의 풍경을 여러 가지로 그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고집스런 턱에 비뚤어지고 얇은 입술에는 독을 지닌 생물의 무관심과냉혹함이 서려 있는 듯했다.
세눈박이 메기, 오쿠이즈미 히카루, 문학동네, 2007-05-14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죽음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있어 어려움 없이 자연스럽게 죽어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잠에 빠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어느샌가 잠이 들었다가 눈을 뜨면 창 밖은 이미 훤히 밝아 있었다.
딱히 꺼려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멍하니 있는 사이에 아버지는 세상을 뜨고 말았다.
침투하기 위해서는 타협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지나치게 타협하다보면 교리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만다.
“…자신이 들어갈 무덤이 있다는 건 생전에 맺은 인간관계가 죽은 후에도 계속 보증된다는 뜻이야. 따라서 무덤이 없다, 무덤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은 굉장히 불안한 일이지.”
벽에 묻은 검은 먼지를 손으로 문질러보니 그것은 실체 없는 그림자가 아니라 벽 자체에 난 흠집이었다. 우주에 새겨진 흠집. 그것이 바로 자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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