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없는 하프, 에드워드 고리(글/그림), 황금가지, 2005
이어브래스 씨가 잠에서 깼을 때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길고 세찬 자줏빛 눈보라를 알리는 첫 눈송이로 「현 없는 하프」를 시작하자는 생각이 떠올랐다. 바깥에서는 그렇지 않다 해도, 종이 위에는 오후 내내 온갖 방식으로 눈송이가 계속해서 내렸다.
이어브래스 씨는 몇 달 동안 덮어 두었던 초반부 장들을 빠르게 넘겨 보고 있다. 이제 그는「현 없는 하프」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 끔찍하다, 끔찍하다, 끔찍해. 이게 모두 철부지 소리라는 걸 알고도 집필의 은근한 고통을 견뎌 내려 든다면 미친 게 분명하다. 미쳤어, 왜 차라리 간첩이 되지 않았을까? 어떻게 해야 간첩이 되지? 그는 초고를 태워 버릴 것이다. 왜 불이 없지? 왜 불을 피우지 않지? 어쩌다가 3층에 있는 안 쓰는 방에 들어간 걸까?
모든 것이 영원히 멈춘 것 같은 밤과 낮 사이 그 짧은 순간에, 이어브래스 씨는 「현 없는 하프」의 마지막 문장을 마쳤다. 방은 깔끔해 보이고 이어브래스 씨는 침착해 보이지만, 둘 다 속임수다.초고는 책상 오른쪽 아래 서랍에 다 들어차 있고, 이어브래스 씨 자신은 완전히 넋이 나가 있으니까.
그 다음에는 윤문을 해야 한다. 이것은 그냥 집필보다 더 괴롭다.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야 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옛날에 쓴 것을 기억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어브래스 씨는 짜증을 내며, 왜 어떤 사람들은 근심을 꽁꽁 싸서 유리종 아래 매달아 둘까 생각한다.
# 에드워드 고리는 사실, 글보다 그림으로 뛰어나고 명성이 높은 사람이다. 그의 책은 모두 그림책이며, 글자 하나 하나의 타이포까지 그가 만들고 연출했다고 한다. 그림은 우선, 나만 보는 걸로 해두자. 그림을 복제하는 건 썩 내키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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