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냉이꽃

 

               이근배

 

 

하늘은 무슨 땡볕을

그리 달구어 내리 쬐이던지

땅은 또 떡시루를 연 듯

한 여름 그 밭고랑에 나가 앉으시던

어머니, 바로 그맘때쯤인

신사년 윤 유월 스무 사흘 새벽

내몰라라 잘도 삭히셨던

가시방석보다 더 쓰리고 아픈

망백(望百)의 세월 훌훌 털어버리시고

언제 어디로 가셨는지 모르는

지아비를 찾아 당신은 떠나셨습니다

저 조선왕조를 한 몸으로 지키려던

거유(巨儒) 면암*의 문하에서도

으뜸이던 장후재학사의 셋째 딸로

타고난 복을 누렸을 만도 한데

어쩌다 나라 빼앗긴 세상을 만나

지아비 섬길 날도 모두 빼앗기고

한 시도 마를 날 없는

슬픔의 긴 강을 건너오셨습니다

텃밭에서 이른봄부터 늦여름까지

당신의 손끝에 무수히 뽑히던 냉이꽃풀

그것들은 당신의 얼굴에서 내리던 것이

땀방울인 줄만 알았겠지요

이 못난 아들도 알아채지 못했으니까요

누군가 당신의 빈소에 와서

냉이꽃 할머니가 돌아가셨네요

짧은 한 마디에

당신은 고향집 텃밭에 앉아계셨습니다

 

 

 

 

l       면암: 최익현의 호

 

 

 

 

 

 

 

 

'other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농씨 - 이화은  (0) 2007.10.04
붉은 적삼 - 문인수  (0) 2007.10.04
산수유나무의 농사 - 문태준  (0) 2007.10.04
거미야 - 권경희(나비)  (0) 2007.10.02
삶, 후회, 판단, 두려움, 미래  (0) 2007.10.0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