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쪽배 하나가 떠 있었다.
쪽배 한 쪽 끝에 한 여자가 무릎을 지긋이 누르며 앉았다가 수직으로 점프했다.
여자의 무게가 사라지자 배의 한 쪽이 위로 솟아 올랐다.
여자는 하늘로 날았다가 다시 쪽배 한 쪽 끝을 누르며 착지했다.
여자의 무게에 눌려 배의 한쪽이 스윽 가라앉았다가,
다시 쑤욱 솟아오르며 여자를 위로 밀어올렸다.
여자는 다시 날아올랐다.
배의 다른 한 쪽에도 여자가 있다.
여자가 서있는 배의 끝부분이 솟아오를 때 하늘 위로 점프했다가
다시 자신이 있던 배의 끝부분에 착지할 때, 배 끝이 출렁이며 가라앉았다가
다시 쑤욱 솟아오르며 여자를 밀어올렸다.
여자는 계속 날아올랐다. 내려앉았다.
나는 이 모습을 내가 있는 줄도 모르고,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느낌은
아무도 없는 빈 방에 홀로 TV가 켜져 있는 것처럼
비어있고 내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나는 꿈을 꾸면서도
내가 그 꿈 속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며
그저 풍경인 것처럼 있었는데,
내가 자연/식물이었다면 아마 평생 이런 느낌으로 살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어젯밤에 존슨즈 바디케어 소비자 조사가 있었고,
밤 11시까지 난 계속 카피 쓸 생각을 하고 있었고,
또 오늘 제법 중요한 아이디어 회의가 있었는데,
그래서 난 잠을 자다가 깼을 때 이 꿈이 광고 아이디어로서 떠오른 줄 알았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대체 이게 무슨 광고란 말인가, 싶기도 하고.
꿈속에서까지 광고를 만들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는 건 싫다, 싫다, 싫다,
세 번 말하며, 꿈에게 조심하도록 주의를 주고 싶기도 하다.
보통은 꿈을 꿨구나, 하고 말텐데
이 꿈은 꿈이 아니라 어떤 메세지처럼 자꾸 반복되어 생각된다.
우리는 나름대로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나름대로 살아가는데
나는 요즘 자꾸 죽는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나이가 들고 정신이랄까 감정이랄까 욕심과의 관계가 성숙해지면
거리나 간격을 나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까지도 간격을 즐기기란 쉽지가 않다.
나는 자꾸만 부딪치고 싶고, 기대거나 감싸안거나 비비적대고 싶어진다.
한국에서는 특히나 그런 성향이 인간다운 것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지만,
내가 볼 때 그것은 1차적이거나 반차적이고,
개나 소와 다를 바가 없는 욕구이며,
뚜껑 덮은 벼룩 상자 안에서 벼룩 뛰는 소리와 같다.
우리는 더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관계에 대한 것이든, 규칙이나 규범에 대한 것이든,
삶이나 죽음, 밤에 꾸는 꿈에 대한 것이든
보지 못했고, 느끼지 못했고,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던
그런 방식과 형태와 질감으로
있을 것이다, 있을 것이다.
나는 쪽배의 양쪽 끝에서 서로의 간격을 유지하며
또한 간격을 유지해야만 즐길 수 있는 놀이인 널뛰기를
거대한 바다를 흘러다니며 즐긴다는 이 꿈이
마음에 스민다.
그건 행복해보이지는 않지만,
뭐랄까, 행복을 초월한 상태로 보여진다.
행복도 좋지만, 행복과의 간격도
꿈도 좋지만, 꿈과의 간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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