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철도 복사기
복사기 앞에 서면
기차소리 들린다
철커덕 철커덕
철로를 찍어내는 복사기
휴양지 세부도 찍히고
엘르 모델들도 찍히고
압축되고 납작해진 풍경들이
기차소리에 눌린다
고장 나기 전까진 아무런 관심도 끌지 못하는 복사기
앞에 서서 커피 한 잔을 주문하듯이
복사 버튼을 누른다
에스프레소 샷을 쥐어짜듯 깜빡이는 불빛
앞에 서면 내 정신도 희미해지는 느낌이다
주눅드는 시간이다
복사기는 캄캄한 밤을 쉬지 않고 달린다
헬싱키의 모던 카페를 찍고
뉴욕, 런던, 신주쿠 찍고
자꾸 어딘가로 달아나기만 한다
달아나기만
철도원이 차표검사를 하듯
복사실 문이 열리면
허둥지둥 마음 속에 복사기를 감춘다
쿵 캉 쿵 캉
복사기가 달린다
복사기가 복사하며 멀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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