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자 보호구역

 

 

 

내 방에는 패배자 보호구역이 있다

한 쪽 벽에 크레파스로 그어놓은

패배자 보호구역에 목을 들이밀고 잠을 잔다

아침이면 보호구역에서 깨어나

재갈을 닦아 미소에 걸고

폐렴 걸린 늙은 전철역을 향한다

오늘도 보호구역에서 빠져 나온 사람들이

피로한 냄새를 풍기며 재갈을 반짝거리며

안개 묻은 공짜 신문을 읽는다

나는 요 며칠 계속 회사로 간다

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어서 조용하다

오규원 시인은 광고 회사 다니면서도

이런 저런 회사 얘기를 많이 썼는데

나는 며칠이고 그저 회사로 간다

돌아오는 기억은 없다

그저 회사로 간다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할 때는

일정 분량을 채우기 위해 서성거릴 줄은 몰랐는데

열차를 몇 대나 그냥 보내도록

서성거리다가 결국

진흙더미 같은 사람들 속에 묻혀버린다

패배자 보호구역에서 나온 사람들이

커피열매처럼 돌아다니는 서울에서

크림 섞은 보호를 주문하는 별들의 다방 안에서

패배자들 사이에서 동냥하는 장애인을 본다

장애인이 패배자들을 돌보는 모습을 본다

나는 돌아가고 싶지만

아직 충분히 패배하지 않았다

충분히 패배해서 돌아가기 위해 회사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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