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한국말 중에
쑥스러움
이 있다.
부끄러움이란 말이 어딘가 모르게,
교육/주입된 감정이라면,
(...한 상황에서 ...한 사람이라면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등)
쑥스러움은 그보다는 좀 더 자연스러운 식물적인 감정 같다.
나는 사전도 찾아보지 않은 채 내 나름
‘쑥스러움’은 ‘쑥과 같은’이란 뜻일 거라고 결론 내렸다.
나는 쑥이 된 것 같은 느낌을 가진다, 라는 뜻이
나는 쑥스러움을 느낀다, 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어제는 내 생일이었고,
금요일에 회사에서 동료들이 생일파티를 조촐하게 열어주었다.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많은 것들을 싫어하는 나지만
한국인 특유의 쑥스러움을 느끼는 순간만큼은
한국인을 좋아하게 되는데
이를 테면 이런 것이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000의 생일 축하 합니다~”
라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를 때
한국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사랑하는 000”라는 부분에서 목소리가 흐지부지해진다.
쑥스러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정해진 노래 가사에,
생일을 맞이한 사람의 이름을 넣어, 어느 정도는 형식적으로 “사랑하는”이라고 표현하는 것인데
이것 조차 쑥스러워서 많은 한국 사람들은 이 부분에서 발음을 얼버무린다.
아마 미국인들이 미국인의 생일 파티에서
같은 노래를 부른다면 보다 분명하게 “사랑하는 000의”라고 노래 불렀을 것이다.
이후에 관계가 어떻게 되든, 실제로 그들이 의미하는 사랑이 무엇이든 간에.
그러나 한국인의 성향도 나날이 바뀌어 가고 있고,
대체적으로는 좋은 쪽으로 바뀌어 간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쑥스러운 부분은 점차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것은 불과 몇 십 년 전만해도 서울에서도
뚝방 같은 데 가면 쑥이 널려 있었다고 하는데
이제 자연스런 쑥은 어디로 갔는지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것처럼
쑥스러움도 자연히 그 색을 잃어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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