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 펜처럼
기억하고 싶은 부분에 칠해놓은 형광 펜처럼
기억하고 싶은 시간을 향해
형광물질처럼 걸어 다녔다
세상은 기억되기 위해 숨죽이기 보다
시끄럽게 모든 걸 흩어버리고,
학교 끝난 유치원생들처럼 성당 계단을 내려오는 사람들 앞에서
땅에 떨어뜨려
볼이 쑥 들어간 볼펜처럼
종이를 찢어먹은 글씨처럼 나는 비틀거렸다
싸구려 종이를 밟고 내려오듯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 속에서
성모 마리아도 이처럼 수다스러웠을까…
뚜껑 덮인 볼펜처럼 벽에 기대서서
사람들과의 간격이
생각을 만들어내고 말을 만들어내길 기다렸다
좋은 말씀을 식당 메뉴처럼 나눠가진 사람들이
뭘 먹을까 얘기하며 빠져나가는 동안
좋은 생각이나 말을 만들어내진 못했으나
그래서 조용했으나…
하늘에서 천사들이 용변을 보고 물을 내리면
그 소리가 저처럼 희희덕댈까
말씀 많은 천국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생각하니
똑딱, 과연
펜의 습성을 닮은 사람들은
자꾸만 머리를 바닥에 찧고
장롱 속에서 발굴되고
그리하여 사람들 모두 천국으로 떠난 뒤에도
땅에, 나무 종이 위에 남아 있겠거니 생각되었다
기억하고 싶은 부분에 칠하는 형광 펜처럼
사람들을 피해
주일에 금을 긋는 오후의 명동 성당
기억되고 싶은 것들은 조용히
근처에 있는 것 같아
잉크가 다 빠져나간 펜들이 데구루루 구르듯이
낙엽들이 떨어진다
조용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