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방을 훔친 적이 있다.
나는 졸업하고 1년 정도 지난 뒤에 취직이 결정되었고,
뭔가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학교에 놀러 갔다.
교수님도 만나고, 후배들도 만나고, 취직을 자랑도 하고, 혼자 과방에 앉아 있었다.
그때 과방 책상 위에 낡은 노스페이스 가방이 하나 보였다.
내가 가지고 있던 노스페이스 가방을 파리에 무전여행 가서 노숙하다가 도둑맞았던 기억이 났다.
나는 그 가방을 살펴보았다.
책도 연필도 하나 없이 텅텅 비어있었다.
나는 이 가방을 들고 과방을 나가서, 학생회관 휴게실에 앉았다.
그리고 시를 한 편 썼다.
시의 내용은 이렇다.
나는 이제 큰 도시에서의 취직이 결정되었고,
보통의 사람들처럼 자본주의 풍경의 일부가 될 것이고,
그러므로 도둑질에도 능숙해질 필요가 있고,
그래서 가방을 훔쳤다는 내용의 시였다.
나는 이 시를 어느 시 잡지에 발표했고,
사람들로부터 비난 받고 싶었다.
그렇다. 나는 시인이다. 2004년 대학교 4학년 때 등단을 했다.
그리고 지금은 광고 대행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고 있다.
상당히 많은 일들이 그렇지만, 과연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은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이로운 직업일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열심히 일해나가고 있다.
나는 가방을 훔치고 6개월 정도 지난 뒤에 자백했다.
학교에서 작가초청회라는 프로그램을 준비했고,
나는 비록 무명시인이지만, 졸업한지 얼마 안 된, 학생들의 마음을 잘 아는 선배로서,
뭔가 강연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아서 학교로 갔다.
나는 학생들 앞에서, 아마도 후배의 것일, 노스페이스 가방을 훔쳐갔다고 고백했다.
그 자리에 없었으나, 그 가방의 주인은 내가 알던 후배였고,
얘기를 전해 듣고는 화를 많이 냈다고 했고,
내게 실망했으나 그래도 내가 사과로 준비한 비아모노 가방은 가져갔다고 한다.
정치인들이 쓸데 없는 말이 많은 것처럼,
나는 도둑놈이므로 이런 저런 말들이 많아졌다.
내게 가방은 패션이나 트랜드, 액세서리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삶과 깊은 관련이 되어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20년 이상을 가방을 매고 살았다.
언뜻 보기에 ‘i-PACK’이라는 이 가방은 사람을 이롭게 하기 위한 가방 같다.
몸을 편하게 하고, 몸을 더 움직이게 하고, 음악을 통해 기분까지 활기차게 하려는
의도가 느껴진다.
이를 테면 선의가 느껴진다.
나는 이런 가방이 좋다.
이 가방과 함께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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