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직후에 저하고 인터뷰 했을 때 “정책 면이든 뭐든 혹시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통령에게 바랄 게 뭐가 있어요? 우리가 필요한 건 우리가 싸워서 얻어야죠”라고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뮤지션의 문제, 환경의 문제, 정부의 책임, 이 모두를 다 따져봐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대단히 중요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기이할 정도로 다뤄지지 않는 것이 ‘대중의 책임’에 대한 문제예요.
현재 우리 대중이 가지고 있는 악습이 몇 가지 있는데, 첫째는 어디서 들어본 듯한 멜로디를 무지하게 선호합니다.
우리나라 대중들이 갖고 있는 악습 중 하나가 음악을 들을 때 보컬과 반주로 이원화해서 듣는 겁니다. 외국 같은 경우에는 목소리가 악기의 하나일 뿐인, 사운드가 정말 좋고 음악의 전개가 좋아서 히트하는 음악들이 탄생을 하지만,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가창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으면 히트할 수가 없었죠. 그랬는데, 90년대 그룹 봄여름가을겨울은 연주곡으로 된 히트곡을 만들어내잖아요. 거기다가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속물 근성, 수전노 근성이 있습니다. 예술비, 문화비 지출을 자기 인생에서 맨 마지막에 놓아버리잖아요.
우리는 열 곡, 스무 곡을 들어도 한 푼도 안 내놓으니까 당연히 거리의 악사라는 게 존재할 수가 없죠.
우리나라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나쁜 근성 중의 하나가 자기 히어로를 중간에 내다 버리는 건데요. 자기 히어로를 버린다는 것은 어쩌면 자기를 버리는 거거든요. 10대 시절과 20대 초반까지 자기가 열광했던 히어로는 그 사람의 평생을 결정짓는 정체성이 되어버려요. 그런데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보수 기득권층에 영합되어버리는 순간 자기 히어로도 같이 버린단 말입니다.
우리나라 팬들은 20대 후반만 되면 ‘내가 10대 때 XXX이 좋았었는데, 그땐 미쳤었지’라고 합니다. 그건 자기 자신에 대한 모욕이 되는 거잖아요. 별로 멋있어 보이지도 않구요. 제가 볼 때 우리나라 대중들은 여자는 결혼적령기가 다가오면 – 결혼적령기라는 단어 자체를 부인하지만 – 남자는 군대에 갔다 오면 일제히 보수 기득권 층을 향해서 맹렬히 돌진하면서 자기가 지금까지 사랑해왔던 모든 것을 내던져야만 거기에 골인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얘기하신 것이 인상적이었는데요. “부모들은 자식을 감시하려 한다. 만약에 자식의 생각과 행동을 24시간 내내 파악할 수 있는 감시칩이 있다면 과연 자식에게 그 칩을 달지 않을 부모가 얼마나 있겠느냐. 그 칩을 단다면 그때부터는 부모와 자식 사이가 아니고 노예 아니냐”라고 하셨는데,
그러니까 대마초에 대한 논쟁은 그게 담배보다 몸에 나쁘다고 한들 국가가 그것을 간섭할 권리가 있느냐, 개인이 알아서 해야 될 일이 아니냐는 문제구요. 도 한 가지 간통과 다른 대마초만의 또 다른 논점이 있다면 ‘국가가 소위 자신들이 생각하는 올바른 목적을 위해서라면 정보를 조작하거나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해도 되느냐’라는 �인데요. 군사독재 시절부터 대마초에 대한 정보를 곡해해서 국민들에게 그릇된 정보를 알리고 공포심을 심어주면서 협박을 했거든요. 70년대에 정부에서 만든 <대마의 공포>라는 홍보 영화를 보면요.
저의 개인적인 입장이 뭐냐 하면 결론적으로 대마초가 불법이라도 좋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알리고, 사람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고, 주인인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얘기를 한 번이라도 들어보게 한 다음에 결정을 내렸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거죠. 정부가 ‘이것은 처죽일 만한 범죄’라고 자기들 마음대로 지정해놓고, 자기들 딴에는 국민들을 계도한답시고 몇 십 년 동안 거짓말을 해댔잖아요. 그래서 대마초 비범죄화 진영 중에는 이것을 군사독재의 잔재로 국민을 우롱하고 협박한 아주 괘씸한 케이스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여호와의 증인들을 존중합니다. 뛰어난 사람들이에요. 믿으려면 그렇게 믿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죄지을 것 다 짓고 일요일 날 가서 잘못했다고 하는 게 아니라 여호와의 증인들은 회개할 짓을 아예 안하는 사람들이잖아요.(웃음) 얼마나 뛰어납니까?
기독교 개혁운동을 하시는 분들 중에서는 역설적으로 한국 기독교는 이대로는 안 되고 완전히 무너졌다가 일어나냐 되는데, 그런 진실한 믿음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 대문에 아직 기독교가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 같다. 일부 존경할 만한 기독교인들 때문에 교회가 버티는 것 같아서 그 사람들이 더 미울 때가 있다는 얘기를 하시더라구요.(웃음)
제가 문신 노출 했을 때도(사실은 스티커였지만) AD 한 사람이 현장에서 어떻게 해야 되나 하고 있는데 주조(주조정실)에서 번개 같이 지시가 내려와서 ‘그건 우리가 간섭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대로 계시게 해라’고 했다더라구요. 오히려 웃기지 않습니까? 예능국 PD들보다 관대하잖아요. 예능 프로그램에는 3분 출연하면서 귀걸이 달고 나갈 수 없어서 ‘귀걸이 빼’ 이런 걸로 싸우고 있는데, 교양 프로그램은 100분을 나가면서 문신 새기고 온갖 삽질을 다해도 돼요. 이게 얼마나 아이러니컬해요.
예능 프로그램 하던 사람들의 자기 검열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 그게 자기 검열이더라구요. 보신주의고.
한국의 교육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제도와 함께 남들의 인식이 다 바뀌길 바라면서도 정작 자신을 바꿀 생각은 전혀 없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나 지금의 삼십 대가 제 노래를 듣는다는 것 자체가 불편하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은 변했는데 저는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데요.
제가 평소에 생각하는 소재나 내용들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일부러 글자 수를 안 만드는 거죠. 만들어버리면 갇히니까요. 생각할 시간을 최대한으로 벌어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단어와 절묘한 어떤 운율을 맞출 시간을 최소화 해버리고, 그 대신에 생각할 시간, 사고할 시간을 최대한 벌어주는 거죠. 노래하기 직전까지 벌어주는 거니까 그게 맥시멈이겠죠.
왜 어린놈이 산다는 게 뭔지 하면 어른들이 화를 내잖아요. 말이 됩니까?
내 인생이 어떻게 될 건지 뭘 해야 되는지 고민이 많은 시기인데요. 왜 어른들은 고민을 못하게 할까요? 니가 뭘 알아서 고민을 하냐고 하잖아요.(웃음)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를 쓸 때 가장 대중적인 이야기를 쓰는 것이라는 공식을 확인한 거죠.
음질 면에서 CD보다 떨어지고, 사용자의 접근성이 용이하다 뿐이지 사용자의 매너를 개판으로 만드는, 직접 발을 써서 구매하지도 않고 손을 써서 포장을 벗기거나 플레이어에 걸지도 않으며 기다리는 시간도 없고, 거기다 건방지게 음악을 듣다가 다른 음악으로 스킵하거나 마구잡이로 골라 듣고 마구잡이로 다운받고, 그럼으로써 콘텐츠를 깔보게 되는데요. 그런 소비자의 태도를 MP3의 무차별 복제가 조장함으로 해서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은 사용자입니다 올바른 음악 감상 태도를 잃어버리고 음악을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교육받지 못하게 되니까요. 사실 음악을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거든요. 소중하게 여겨라, 이 한 문장이면 족하다고 봅니다.
진공관은 진공관의 마인드가 있었고, 트랜지스터는 트랜지스터가 상징하는 시대정신이 있었고, CD는 CD가 내걸었던 슬로건을 가지고 있고, 워크맨이 표방한 시대정신이 있고 워크맨이 창출해낸 문화가 존재한다면, 제가 묻고 싶은 것은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MP3의 마인드는 무엇이냐 디지털의 마인드는 무엇이냐 디지털 시대의 소비자들이 내건 슬로건은 무엇이냐. 뮤지션을 깔보고 핍박하고, 콘텐츠를 우습게 알고, 가급적이면 돈을 쓰지 않고, 문화비를 최대한 절감한 상태에서 콘텐츠를 마구 긁어모으며 함부로 평을 찍찍 갈겨대는 태도 이외에 너네들이 가지고 있는 시대정신이 뭐냐.
그런 대중들의 태도에 대해서도 “우리가 늘 국악을 듣고 즐깁니까? 절대 아니죠. 국악에 대해 전혀 모르면서 ‘국악이 얼마나 죽이는데 왜 안 듣냐’며 국악의 우수성을 외국인들에게 알리려고 노력합니다. 예술을 즐길 줄도 모르면서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세계 만방에 과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 할 얘기가 아닙니다. 그들은 ‘나치’와 같습니다”라는 말씀을 하셨지 않습니까?
가끔 차가 막히면 짜증이 나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거야? 짜증나게’라고 투덜대고 보면 그 안에 제가 있거든요.(웃음)
왜 오지 오스본이 양복을 입지 않겠어요. 왜 오지 오스본이 롤스로이스를 안 타겠어요. 오스본 패밀리 쇼 보면 나오잖아요. 돈은 좀 있지만 문화적인 태도는 하나도 변한 게 없잖아요. 또 그런 것을 상징하는 게 엘비스 프레슬리의 진주 캐딜락이에요. 캐딜락에다가 진주를 덮어서 도배를 하 ㄴ엘비스 프레슬리의 캐딜락이 있는데, 상스러운 거야.(웃음) 미국 트럭 운전사 출신 어디 안 가는 거야, 자기 클래스를 벗어나지 않잖아요. 근데 우리나라는 ‘굳세어라 금순아’를 들으면서 돈을 벌다가 돈을 벌고 나면 갑자기 예술의 전당을 가려고 하니까요.
자기 계급에 대한 애정이 없다 보니까.
저는 클래스가 나눠진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클래스가 나눠지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게 더 문제라고 봐요. 한국 사람들을 조사하면 다 중산층이라잖아요. 없는 놈은 자존심 상해서 중산층이라고 하고, 있는 놈이 해코지 당할까 봐 불안해서 중산층이라고 하고, 무슨 이런 나라가 다 있어요? 전 국민의 99%가 중산층이고 빈곤층은 전 재산 30만 원도 안 되는
사람들한테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게 있는데요. 공부 못한다는 게 사람이 맞을 이유가 되는 거냐, 공부를 못한다는 건 그냥 공부를 못하는 거지 그게 무슨 죄도 아니고, 우리나라에서는 공부 못하면 죄인이잖아요. 부모한테 고개 숙여야 되고 선생한테도 고개 숙여야 되고.
정치가가 무능하다는 것은 국민들이 무능하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잖아요. 우리 국민들도 정신을 차려야 되는 게 우리가 원하는 등급, 그 정도 퀄리티의 정치가를 가질 자격이 우리에게 없으니까 자꾸 그런 정치인들이 나오는 거거든요.
그런데 왜 한국은 결혼 만족도가 떨어질까요?
결혼을 연애의 완성으로 보는 개념이 일단 치명적인 것 같구요. 결혼도 연애의 과정일 뿐이고 연애는 끝까지 가는 거잖아요.
한국에서 남자가 화장실 앞에서 여자 핸드백 받아쥐고 기다리고 서 있다든가 차 타면서 택시 문을 열어준다든가 음식점에서 의자를 빼주고 코트를 받아 걸어준다는 것은 성공한 남자, 제대로 된 남자라는 자신감이 있을 때나 가능합니다. 콤플렉스가 더덕더덕 붙어 있는 남자는 이 짓 못합니다.
전 결혼할 때 상대편에서 되게 의아해할 줄 알았거든요. ‘야, 그 사람 인기 가수잖아. 판을 수백만 장 팔았잖아. 그런데 집 하나 없대? 이상하잖아’ 이런 얘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당연히 그 나이에 돈이 없지. 서른다섯 살이 돈이 있겠나?” 하는 이 멘트가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사람은 게으르지 않게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예순 살쯤 됐을 때 돈이 좀 있게 된다고 믿는 분이었어요.
적당히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고 아이를 갖는다는 얘기는 그 당시의 저에게는 수치고 모욕이었죠.
흔히들 노부나가가 일본 통일의 기초를 마련하고, 히데요시가 그 다음에 꼴랑 먹어 버리고, 이에야스한테 넘어가는 것을 밥 짓기에 비유해서 얘기하는데, 우리나라에서 똑같이 얘기하더라구요.
기독교도들의 오만에 의해서 비기독교인들이 받는 스트레스와 이런저런 막심한 피해에 대해서 반성이 없을 수밖에 없는 게 기존의 기독교인들은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는 거거든요. 자기들이 얼마나 폐를 끼치는지에 대해서.
비기독교인들은 비기독교인으로서의 삶을 누릴 자유가 있는데, 기독교인들은 비기독교인을 비기독교인이라고 보지 않고 반기독교인이라고 보니까요. 비기독교인들은 기독교에 대해서 관심이 없지 기독교를 적대시하는 건 아니거든요. 지금도 기독교라는 종교 자체에 대해서 짜증내기보다는 한국적 기독교가 뿜어내는 그 무시무시한 폭력의 에너지와 압박에서 오는 질식 상태에 대해서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뿐인데요.
우리도 일상생활에서 전투를 중지하고 진짜로 신사답게 무기를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들이 필요할 텐데요. 그걸 만들어주는 게 스포츠고 음악이고 예술의 역할인데, 우리 같은 경우 그 무기를 끝까지 안 내려 놓으려고 하니까요. 그리고 다시 얘기가 돌아가자면 누구보다 먼저 무기를 내려 놓는 모습을 보여주고, 빈손으로 다가가야 하는 기독교도들이 손에다가 공갈, 협박, 집단적 광기, 다단계 판매에 가까운 시스템 같은 무기들을 들고서 일반 민중들을 협박하니까요. 사실 헌법대로 따지면 기독교도들은 모조리 감방에 보내야 합니다. 협박공갈죄로.(웃음) 예수천국, 불신지옥은 어떤 안티 크리스천이 개발한 슬로건이 아닐까 하는데요. 저 슬로건이 얼마나 많은 비기독교인들을 단결시키고, 기독교인들에 대한 경멸과 반감 같은 것들을 고양시키느냐는 겁니다.
우리나라 교육부는 교육부가 아니라 사육부라는 호칭을 써야 된다고 생각해요. 전국에 있는 아이들을 사육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어떠한 논점을 두고도 진중권과 싸우고 싶지 않아요. 물론 진중권이라는 당대의 대 검객과 칼을 맞대고 싶은 마음이 절대로 없다는 것도 있지만, 설사 내가 이길 공산이 있더라도 그런 검객 앞에서는 칼을 내리고 ‘안 하면 안 되겠습니까?’ 하고 예의를 취해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거죠.(웃음)
대중들이 독특한 캐릭터를 용인해줄 수 있는 수용 폭이 늘어나는 속도와 내가 마모되어 둥그래져서 편입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그 속도, 그렇게 양쪽의 속도도 봐야 되는 거거든요. ‘이게 과연 내가 나이 사십 먹고 둥글어져서 사람들한테 수용되기 편한 형태로 바뀌는 거냐, 아니면 사람들의 수용 폭이 넓어지는 거냐’를 봐야 하는데요. 사람들의 수용 폭은 일정하게 넓어지고는 있지만 언제든지 돌변할 수 있잖아요.
영국에서 내가 배운 게 뭐냐하면 밴드는 수단도 아니고 목적도 아니고 생활이라는 거거든요. 밴드 생활을 하다 보면 음악은 그냥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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