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박지

 

 

 

눈 속에 은박지가 들어왔다

불어도 깜빡여도 문질러도 빠지지 않는다

불어도 깜빡여도 문질러도 빠지지 않는 대통령 당선자처럼

불어도 깜박여도 문질러도 흔들리지 않았던 내 아버지의 한 표처럼

당선자가 누구인가 보다

당선자를 뽑은 그 이유들로 인해서 울며 이민을 준비한다

아버지 안녕, 친구들 안녕

나는 눈물의 힘을 괜히 믿었다

겉만 빤짝거리는 은박지 하나를 과소평가했다

울면 나으리라 믿었다

울어도 낫지 않아 병원에 갔다

염증이 생겼다고 했다

왜 진작 병원에 오지 않았냐고 의사는 물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오토바이를 타고 언덕을 치솟아 오르는

어린 사람들이 보였다

동네 피자 스티커가 붙어있는 빨간 오토바이를 타면서도

창피한 줄 모르는 씩씩한 모습이

매콤한 불닭 같았다

하늘이 쪼여 저녁마다 맵다

갈비탕에 고춧가루를 풀듯이

육수 가득한 밤하늘에 별들이 풀어진다

목뼈를 세워 하늘을 본다

은하의 육수가 목뼈를 따라 흐른다

껌을 싸고 초콜릿을 싸고 인공위성을 싸는 은박지가

내 눈에 들어왔듯이

각종 통신기기와 짜증스런 욕구들과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 같은 것들이

우주의 망막을 파고들어간다

우주도 눈물의 힘을 믿을까?

서울대입구역 사거리에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빨간 오토바이가 쓰러져있다

우주 헬멧을 쓴 채 누워서 바들바들 떤다

나는 눈 속에 식염수를 몇 방울 넣고

식염수가 왜 코로 넘어가는지 궁금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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