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 스완네 집 쪽으로, 마르셀 프루스트, 국일미디어, 2007년(초판19쇄)
우리 둘레에 있는 사물의 부동성은, 모르면 몰라도 그 사물이 다른 어떤 것이 아니고, 그 사물 자체라는 우리의 확신, 다시 말해, 그 사물에 대한 우리 사고의 부동성에 말미암은 것이다.
… 비겁한 점에선 이미 어른이었던 나는, 우리 모두가 한번 어른이 되고 나면, 눈앞에 비통한 것, 의롭지 못한 것이 나타날 때 곧잘 쓰는 수를 썼다. 말하자면 보고도 못 본 체하려고,…
내 방은 투명하고도 깨지기 쉬운 서늘함을 거의 닫힌 덧문 너머 오후의 햇빛과 맞서 부르르 떨면서 보호하고 있었다. 햇빛의 반영이 그 황색의 날개를 통과시키는 방법을 겨우 발견하고서도, 덧문의 살과 유리 사이의 한구석에 마치 날개를 펴고 있는 나비처럼 그대로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내가 외계의 사물을 볼 때 내가 그것을 보고 있다는 의식이 나와 그 사물 사이에 남아 있고, 얇은 정신의 가두리로 그 물상의 가장자리를 둘러치기 때문에, 나는 직접 그 사물의 실질에 늘 손대지 못하였다.
문장을 구성하는 게 나 자신이 되고 보니 내가 생각 속에서 깨달은 바를 문장이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지 여부에 정신이 쏠려, ‘사실과 똑같지’ 않을 걸 두려워하며, 내가 쓰고 있는 것이 쾌적한 감을 주고 있는지 스스로 묻기에 시간을 허비하였다.
나는 살그머니 떠나려고 하였는데, 내가 낸 기척이 아마도, 고모의 잠 속에 들어가, 자동차 용어에서 말하듯 ‘기어를 변경’하였으니, 코 고는 음악이 한순간 멎었다가 다시 더 낮은 가락으로 시작되더니, 눈을 뜨고, 그리고 그때 비로소 볼 수 있었던 얼굴을 반쯤 돌렸다.
그리고 이 순간부터, 나는 한 걸음도 걷지 않아도 된다. 이 뜰에서는 지면이 대신 걸어 준다. 오래 전부터 나의 행위에 의식적인 주의를 동반하지 않게 되니 이 뜰에서는. ‘습관’이 나를 그 팔 안에 안아 주고, 그리고 나를 갓난애처럼 침대까지 옮겨 주는 것이다.
숲은 이미 검고, 하늘은 아직 푸르다…….
그곳까지 몇십 리 되었지만, 그 간격은 중간에 아무 장애들이 없어서 좁게 보여, 뜨거운 오후, 지평선 끝에서 오는 것 같은 일진의 바람이, 가장 먼 밀밭을 일렁거리며 가없는 넓이 위를 물마루처럼 퍼져 가고, 속삭이면서, 미지근하게, 나의 발 밑에 와서, 누에콩과 토끼풀 사이에 눕는 것을 보자, 우리 둘에게 공통된 이 벌판이, 우리들을 접근시키고 맺어 주는 것같이 생각되어, 이 바람은 그녀의 곁을 지나온 것이다. 그것은 그녀한테서 온 어떤 소식이어서 나에게 속삭이고 있지만 뜻을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지나가는 바람에 입맞추었다.
때로는 오후의 하늘에, 한 점의 구름처럼 흰 달이 빛을 잃고 몰래 지나갔다. 마치 자기 차례가 오지 않은 여배우가 극장에서 평상복을 입은 채로, 남들의 눈을 피해 잠시 동안 동료의 연기를 구경하는 것처럼.
멜로드라마의 미학에 실제 생활의 기초를 주는 것은 사디즘을 빼놓고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저분의 마음에 든 거다, 성당을 나온 후에도 나를 생각하겠지, 아마 나를 생각하기 때문에 게르망트의 저녁이 쓸쓸하겠지 하고.
어머니의 팔 안에 안겨 밤새도록 울 수만 있다면, 이런 욕망 따위는 모조리 버려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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