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미래는 없다
지금 당장 불행한데 미래의 행복을 위해 참겠다는 발상은
참으로 터무니 없다. 이를 테면, 그런 방식으로 행복해 본 적 없는 사람만이
생각해봤을 법한 발상이다.
행복한 미래를 위해 지금의 행복하지 않음을 참고 견디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해서 행복해진 사람을 나는 알지 못한다.
행복이란 돈이나 모자, 보석처럼 모으거나 넘겨 받을 수 있는 물질이 아니다.
행복이란 그보다 ‘행복해지는 방법’, 즉 기술에 가깝다.
행복해지는 기술을 한 번 잃어버리고 나면, 돈이나 번듯한 직업으로 살려고 해도
살 수가 없다.
음악이 너무 하고 싶던 10대 젊은이가, 음악에 빠지는 행복을 참고
부모의 터무니 없는 발상을 따라 대학 진학까지 고통을 인내하며 수험 공부를 하고
마침내 대학에, 그것도 음악과는 전혀 상관 없는 학과에 진학을 한 뒤
자, 이제 음악을 하자 해서 할 수 있을까? 혹은
자, 이제 음악을 하자 해서 한다고, 과연 과거에 미뤄둔 바로 그 행복을 되찾을 수 있을까?
만약 내일 행복해지길 바란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뭘까?
그것은 아마도, 오늘부터 행복해지는 것일 것이다.
오늘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오늘 행복해질 줄 모르는 사람이,
단지 남이 “~~~게 하면 넌 행복해 질 수 있어”라는 말을 생각 없이 믿고 따른 사람이
훗날 자신의 행복을 찾아낼 수 있을까?
미안하지만 그건 3류 동화책과, 부모의 마음 속에나 있을 법한 낙천적인 사고방식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고생 끝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곳에 취직을 하면
행복이 아니라 허탈감이 찾아온다.
뜨거운 10대를 묵묵히 참고 견뎌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나면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가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쓰러져 버린 것을
가슴 깊은 곳에서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여전히 본인의 행복의 행방을 모르는 이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후로는 계속해서, 남들이 보기에 부러워할 법한 일들을 목표로 정진하여
다만 남들의 말에서 “좋겠다… 대단해… 훌륭해…” 라는 탄성 속에서
자신의 행복을 대리 만족하게 된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남의 말과 남의 눈과 남의 사고 방식에서 형성된 행복이란 그림이
과연 내가 꿈꾸던 것일까? 혹은 내가 체감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건 다만, 내가 행복을 체감할 수 없기 때문에 의존해 빌어 맛보는
그런 행복의 비닐 껍데기 같은 것들일 뿐이다.
행복한 미래를 위해 오늘의 행복하지 않음을 감수하는가?
그건 다만, 오늘 행복해질 자신 없는 이들의 속 보이는 변명에 불과하다.
오늘 행복하다면 내일도 행복할 것이다.
최소한 어제는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불행하다면 내일 또한 행복해질 수 없다.
행복을 하루 미루면, 실제 행복은 1세기 이상 뒤로 밀려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