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전과 깐 마늘의 환타지

 

 

내 마음 속엔 궁전이 있고

샤시를 붙여 만든 점멸하는 옥탑방은 현실에 있다

밤마다 깐 마늘 같은 빛을 내는 건

철판처럼 뒤집어진 하늘 아래

십자가들이 열선처럼 달아오르고 난 뒤

불이 붙고 껍질 벗겨지는 건

갈라진 손톱 끝과

냄새 나는 운동화 바닥, 현실에 있다

 

마음 속 궁전에서 만화책 좀 빌려다 달라 한다

봉천동 시장통 복판에 한 번 망하고, 한 번 주인이 바뀐

책대여점에 다녀오는 길에

어제만큼 늙고 모레만큼 흐릿해진 할머니가

깐 마늘 한 바구니 저울 위에 올려놓고

눈금처럼 가라앉아있는 걸 본다

마늘이 이렇게 무거워

마늘이 이렇게 궁전처럼 무거워

 

젖은 흙 같은 표정으로 환타지 소설과 만화책을 읽는다

마음 속 궁전엔 공주나 왕자가 살 테고

나는 고작 냄새 나는 보모 정도일 테다

소인은 이제 그만 제 옥탑방으로 물러가겠나이다

밥솥 하나 없는 옥탑방에 궁전 대신 깐 마늘 한 바구니

축축 가라앉는 희끗희끗한 지구

점멸하는 나의 방, 한 페이지 접어 놓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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