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열병의 화학적 근원, 박정대, , 2007(초판 1)

 

 

 

 

 

 

 

 

 

 

 

 

, , 정전

 

 

아주 늦은 저녁

다시 아비정전을 보네

늘상 그렇듯이, 불을 끄고 누워

저 홀로 반짝이는 화면을 보네

야자수 정글 사이로 기차가 지나가면서 영화는 시작되네

코끼리도 보이지 않는 그 야자수 정글은 필리핀이었을까

두만강변이었을까, 아니면 내 마음속 비 내리는 숲이었을까

아주 늦은 저녁

아비정전을 보며 나는 끝내 코끼리처럼 말이 없네

비 내리는 화요일의 기억들, 기억들이 부슬부슬 비 내리는 화요일

화요일에 비가 내리는데 존 레논은 왜 오노요코를 사랑했던 걸까

존 레논은 어디에서 죽었지, 정글이었나

삼류 영화 같은 내 기억의 한구석

내가 사랑했던 그녀는 어디에서 죽었지

필리핀의 야자수 정글 속이었나

햇살 가득한 내 청춘의 뒤뜰이었나

아주 늦은 저녁

아비정전을 보며 한 잔의 술을 홀짝거리네

왜 죽었지, 취하지도 않는 저녁 아비는 열차에서 죽어가고

열차는 야자수 정글 사이를 통과해 가는데

불 꺼진 내 마음이 멀리서 반짝이는 혹성 하나를

아득히 바라보고 있는

, 비 내리는

정전이 씌어지는 음악의 밤이다

 

 

 

 

 

 

 

 

 

 

갱바르드 밀서

 

 

 어젯밤에는 무가당 밤배 클럽의 얼음 맥주 공장에 대한 가당 담배 클럽의 대대적이고 심각한 테러가 있었다네, 그들은 무가당 담배 클럽의 얼음 맥주 공장에 불을 지르고 얼음 맥주의 절반을 녹여버렸지, 한밤의 습격이라니!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때 나는 추억을 암살하기 위하여,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몸을 싣고 아주 먼 곳으로 가고 있었다네, 지구의 한 켠에 저녁이 오면 불빛처럼 돋아난다는 암살자의 주점, 카바레 드 자사생으로 가고 있었다네, 보고를 받고 나는 시베리아 호랑이처럼 우울해졌지, 가당 담배 클럽이 무가당 담배 클럽을 습격하다니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가당이든 무가당이든 우리는, 우리를 옭아매는 제국의 그 나쁜 습기들에 대항하여 오랫동안 함께 싸워오지 않았던가, 나는 분노와 슬픔에 휩싸여 보드카를 벌컥벌컥 들이켰네, 그러자 내 마음은 자꾸만 캄차카 반도의 흙밤처럼 어두워졌지, 가당 담배 클럽에 대하여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것인가, 질문처럼 밤은 길고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네, 열차가 쉬지 않고 달려가는 자작나무 숲은 밤보다 더 길고 질문보다 더 어두웠네, 나는 그때 오래도록 내 마음의 심연 속으로 그렇게 무작정 달려가고 있었는지도 몰라, 적이 없는 자는 사랑 또한 없으므로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만 취할 것,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대륙을 거의 횡단할 무렵, 내 마음속으로 밀려오던 확신, 그것은 사랑의 재구성이었네, 무가당 담배 클럽에 대한 모든 테러를 철저히 무시해버릴 것, 그리하여 사랑이 아닌 것은 저 스스로 미쳐 날뛰다 잠들게 할 것, 그것만이 그들에 대한 처절하고 은밀한 보복임을 그들 스스로 깨닫게 할 것, 그리하여 그때 갱바르드를 불어 무가당 담배 클럽으로 보내는 나의 전언은 바로 이러한 것이었네, 불타버린 얼음 맥주 공장을 아무도 모르게 다시 재건할 것!

 

 

l        갱바르드 입으로 연주하는 악기의 일종.

 

 

 

 

 

 

 

 

 

횡단의 어려움

-         파울 첼란에게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밤

 내 노트북의 커서가 반짝일 때 나는 그대를 생각한다

 

 그대가 바라보던 강물의 깊이와 그 강물이 흘러가 기르던 밤하늘의 화분에 담긴 별들을 생각한다

 

 아무르 강을 내 오랜 기타처럼 연주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슬픔은 검푸른 빛깔이어서 내 기타의 노래 소리 아득히 밤하늘의 별들로 이어질 거라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슬픔들이 마르면 나무들의 영혼이 됨을 이제야 알겠다

 목관악기의 가을을 노래했던 어느 시인의 견고한 고독을 이제야 나는 조금 알겠다

 

 자작나무들이 잎사귀를 흔들며 대지의 오랜 친구들을 부를 때 삶은 현기증 나는 공포로부터 벗어나 바람이 연주하는 작은 음악의 위안 속에 잠길 수도 있다는 거, 이제사 알겠다

 

 흠 있는 영혼들이 거주하는 이 지상의 거처,

 흠 없는 영혼이란 없다!

 

 슬픔이 흘러가 나무가 되고 나무들의 상처가 신생의 바람 앞에서 날것의 음악이 된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밤

 나는 지금 내 노트북의 반짝이는 커서를 보며 그대를 생각하고 있다

 

 나는 지금 그대의 영혼이 별이 되었을 거라는 사람들의 말을 농담처럼 고요히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대는 별이 되지 말아라, 그 딱딱한 광물질의 세계에서 또다시 한 줌의 먼지로 빛나는 것은 더 이상 음악이 아니다

 차라리 생의 혹한의 시베리아로 오라, 와서 자작나무가 되라

 

 하여 내 오래 들고 다니던 낡고 허름한 노트북 속에서 만년필로 꾹꾹 눌러쓴 자작나무 기타로 환생하라

 

 그대가 못다 이룬 음악을 내가 마저 이루리니

 이 영혼의 릴레이를 훗날 사람들은 긴 노래라 할 것이다

 

 하여 예니세이 강가에서 사람들은 자작나무 기타를 두드리며 우리가 만든 긴 노래를 부르리니, 지금 아시아의 한가운데서 모닥불처럼 피어나 하늘에 올라가 뭇별이 되는 사랑

 

 우리들 영혼의 긴 횡단 열차의 밤

 

 

 

 

 

 

 

 

 

 

안개의 달 26일 결사

 

 

안개와 유황에 둘러싸인 내 마음의 공항에서

잡초가 자라듯 비행기가 이륙하고

비행기가 이륙하듯 나는 결사적으로 떠나야겠다

나무들은 걸어가면서

푸른 잎들을 피워 올리기 위해

그들의 생을 모두 사용하겠지만

나는 휴지로 코를 풀며

내가 사용할 여름휴가에 대하여 오래도록 생각했다

젊은 짐승의 태양을 데리고

도대체 인생은 무엇을 할 수가 있나

바닷가에 몇 마리의 바람과 갈매기를 띄운다고

작열하는 생의 여름을 식힐 수 있나

안개와 유황에 둘러싸인 채 나는

오래도록 내 정신적 공황에 앉아 있었네

그곳이 간사이 국제공항이었는지

샤를 드골 공항이었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지만

나는 인생을 사용하기 위해

어디론가 결사적으로 떠나야 했고

나는 또한 인생을 잘, 사용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사랑을 해야 했으니까

그러니까 여기쯤에선, 이걸

내 인생의 칠월 사용법이라고 해두자

아니 안개의 달 26일 결사라고만 해두자

걸어가며 푸른 나뭇잎들을 피워 올리는 나무들에게도

그렇게만 말해 두자

 

 

 

 

 

 

 

 

 

 

 

 

 

 

갈레 슈우

 

 

 궁극의 풍경에 당도했다

 

 이곳 티베트 말로 산은 리이, 강은 창포, 나는 나

 

 동굴은 푹, 고개는 라, 길은 람, 눈은 강, 비는 차르파, 바람은 룽, 별은 가르마, 너는 게랑

 

 물은 츄, 호수는 쵸, 자전거는 강가리, 그는 콩, 그녀도 콩, 저녁은 곤타, 밤도 곤타

 

 동서남북은 샤르, 누브, ,

 

 , , , , , , , , , 십은

 , 니이, , , , 트루, , , ,

 

 그러니까, 내 이름은 리산입니다는 나이 밍라 리산사

 

 안녕하세요는 타쉬 델레

 

 안녕히 계세요는 갈레 슈우, 안녕히 가세요는 갈레 페

 

 감사합니다는 투 제체이, 미안합니다는 고온다

 

 네는 라

 

 이게 시입니까 누가 물어오면, 그저 웃으며 라, , , 고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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