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내가 예쁜,
체 치면서
평범하기로 쌀이 어떨까
아님,
덜 까진 현미는
턱 허니 가슴패기 열어제친 보리
자꾸
뜨물 게워 내는 보리는 어떨까
제 살 터진 뗑그런 콩
고소한 내 콩은 또 어때
잡것,
온전히 속살 터져 핏물 내는 팥
차라리 팥, 팥은 또 어때
아서라, 내
밥에 쌀눈을 보지 못하는 이들
혼쫄 한번 내주겠다
떡판 뒤집듯 뒤집어 보겠다
오진 꿈 꾸었노라
쌀도 현미도 보리도 좋지만
콩이야 팥이야 말도 많지만
차라리 내 찹쌀이 될란다
날 쳐
날 녹여
남 끌어안는 찹쌀이 될란다
애꿎은 체만 탁탁 쳐대는 시절에
오오
나는 직립이다
떡판을 들자면
바벨을 드는 느낌이야
어깨만큼 다릴 벌려 허릴 굽히면
엄지 손톱에 오는 촉촉한 감
한호흡 정지시키는 그 때
그 때 나는 직립이다
장딴지를 거슬러
무르팍 관절을 타
허벅지 근육이 불룩거리고
괄약근이 옴싹 잡히고
허리에 찌잉한 전류가 흐르는 순간
그 순간 나는 직립이다
일이 있는 한 나는 직립이고
내가 직립인 한 사랑도 영원하다
숙련도 끝내는 못질로 끝내고
못질이 영원한 한 직립도 영원하다
살을 내는 활 같은 탄력의 허리가 팅팅한 한
매 순간순간 나는 직립이다
자목련
그렇게 가더이다
단단한 머리 위
더 단단한 송아지 뿔처럼
내게서 피어나
상아처럼 굳을 것만 같더니, 피어
새끼 제비 아가리 같은 자태(姿態)이더니
그 부리 속 혓바닥 같은 수줍음이라도 있더니
치마 입고 선 물구나무처럼 화끈히
몸 열어 젖히더니 간밤에
비바람 맞아, 탯자리
그마저 쓸어내더니
자, 목련 그렇게 가는구나
갔구나
정물(靜物) 1
늦추잡은 줄에 매어져
기우뚱, 땅에 배를 댄 나룻배 한 척
누운 각 중심엔
추 같은 진흙 한 무더기
그 위에 치모처럼 솟은 잡풀들
흔들리고 있다
수명이 다 해도 배는
물이라야 바로 서는 것
노가 빠져 나간 고리
엄연한 앞뒤 자리, 배는
기울어도 강으로 기운 것이다
바다만 바라는 것이다
하초가 얼어붙어도, 짐에 사람에
묵직할수록 뱃구레 깊숙이 간질이던 물살, 그때
물은 가르라고 있었다
이제 밀어내는 물,
손을 뻗으면 금방 잡힐 듯한,
몇 번 뒷걸음이면 닿을 듯한, 거리는
파도를 따라 이어져 있다
풍향계
그는 마주하고 있다 그저
바람 부는 대로 줏대없이
놀아나는 것 같지만
바람만 바라는 것이다
그런 그다. 바람이 놀다 온 자리,
묻어 온 내음도 훔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투명하면서 불투명하고
있으면서 없는 바람, 바람이 바람을 미는
그 중심을 향해, 천지사방(天地四方)
몸을 눕혀 돌고
도는 것이다 돌지 않을 때의 불안
돌면서 제 몸 중심 잡기 –
하나이면서 아닌 바람을 향한 그의 고투는
사시장철, 지금 이 순간도 계속 되고 있다
창에 찔린 물고기 같은 형상…
그를 보려면 올려다 보아야 한다
바람을 보려면 그를 보아야 한다, 허나
단 한번도 그는 같은 모습이 없다
볕 좋은 봄날에
뭔 힘이 밀어 꽃잎은 나오느냐
나오면서
나오면서
피어나느냐
뭔 힘이 밀어 태깔마저 밀어내느냐
볕 좋은 봄 한날
내 오줌 누던 모습, 정면으로 지켜보던 흰둥이랑
쪼그려 앉아서
흰 배꽃을, 분홍 복숭꽃을
한나절 보고 있었어라
삼 년 전 꽃나무 심은 내가 갸륵해서
거름마저 파묻은 참이어서
앞발 드는 흰둥이 목덜미를
쓸어주는데,
내 몸에선 뭔 힘이 밀어
이리 눈물나는 것이냐
거룩, 거룩, 거룩한
- 태풍(颱風)
그 때 나는 그를 코앞에서 맞은 격이었다
제 속에 비를 심었을 때의 그는
위압적일망정 빠르거나 사납지는 않았다
맨몸 저 혼자일 때 그는
소리로 제 길을 내었다
움직이지 않는 것들, 눕지 않은 것들은
모조리 그를 화나게 하는 것들이었다
집 모서리 돌면서 멍이 들고
추녀에 갈라질 땐 소리내면서 울었다
지붕에 부딪칠 때 그는
슬레이트 용마루를 뜯어 올리면서
몸을 꼬아 휘몰아쳤다 사실,
내가 그에게 용서받은 것도 그가 밀 때
몇 발자국이라도 뒤로 밀리는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비를 속에 심지 않는 그는
소리를 심은 채, 낙엽과 검불과 비닐과
비닐하우스와 고춧대와 빨래를
그의 내부로 빨아들이는,
- 심술, 그런 심술이 없었다.
나는 그의 심술 앞에
그나마 비가 안 와서 다행이라고
몇 걸음 또 물러서면서 바위 곁으로 피했다
바위가 둥글다는 사실이 예사롭지 않게 만져졌다 멀리
포기한 눈에 나무들이 미친 듯이
바람 쪽으로 휘어지는 것을 보았다
저렇게 온전히 심술에, 상처에
비위를 맞추는 움직임이 있었다
저렇게 길게 상처의 소리까지 받아내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산 전체가 능선을 자꾸 낮추면서
바람에 자신을 맞추고 있었다
나무는 넘어져서도 잎과 가지를 흔들고 있었다
저 거룩, 거룩, 거룩한, 손길들 속에
나, 살고, 있었다
따지기
언 자리와 마른 자리를
제 속에 두는 게 봄이다
비닐하우스, 그 문턱이 봄의 중심이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비닐하우스가 있고
보온 덮개가 있다
이제 막 상토를 밀며 나오는 고추 모종들
들락날락하는 내 걸음에
시루떡 같은 흙이 들러붙는다
이 불화의 걸음걸이,
장화 코를 차대며 해찰하다가
돌짬에 진흙을 떼어낼 땐
주걱에 묻은 밥풀을 앞니로 긁는 것 같았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또 비닐하우스
그 안에 노란 백열등을 밝히는 마음
일 마치고 장화를 벗어 털었다
바닥에 부딪는 장화의 타격음
꽃샘바람에 올라탄다
떡잎처럼 떨어져 내린,
내 발바닥의 비밀한 상형문자
그제서야 보았다
지구의 봄 소식을 장화로 타전하고는,
그 자리
마음에 쟁여둔 여인이 앉았던
변기에 앉게 되는 일은
좀 야릇한 일이다
허벅지에 전해지는 온기
아직은 빠져나가지 못한 체취
갓 나은 따스운 달걀을 들고
암탉이 빠져나간 둥우리에 앉는 것만 같아서
가슴털로 짚가시랭이를 뉘어놓은 그 곳에
눕는 것만 같아서
엉거주춤하게 앉아 그네가 앉은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야릇하지만 또 불경한 일…
어미닭이 부리로부터 (들었다 놓았다 쉴 새 없던 그 눈동자) 목덜미의 부드러운 움직임으로부터 가슴털로부터 알에 맞춤하게 제 몸무게를 들어올렸을 두 다리로부터 끝없이 옴직거렸을 미주알 그래서 짧았을 꽁지, 그레서 제 몸이 반원을 정확히 그렸을 둥우리로부터
손을 씻고 차마
그네를 마주는 못 보고
그래서 또 생각는 허벅지의 온기는
피 묻은 달걀을 쥔 것 같기도 한 일이다
이즈막, 꽃
상추 따는 여인의 엉덩이가
쌈처럼 보인 적 있다
서 있는 모습으로는 깻잎 딸 때였지만
이는 원경이 좋다
안경알에 떨어진 땀을 입바람으로
분다
네모난 꽃은 없고
네모난 꽃은 없고
나비는 날개가 크지만
몸통은 벌을 닮았다
잎 다 따가고 남은 곳에 핀 담배꽃
배추꽃, 감자꽃, 장다리꽃, 부추꽃, 가지꽃, 깨꽃
꽃도 인제 먹는 꽃이 예쁘다
이즈막 그렇다
번지는 사과꽃 복사꽃, 잘 안 뵈는 모과꽃 살구꽃
꽃은 왜,
둥글 넓적인가
여인의 엉덩이야 그저
묻은 독에서 김치를 꺼낼 때나
장 뜨는 때가 첫대바기 좋지만, 그건
다,
어머니로 해서 그렇다
연보 중…
… 나는 내 어머니의 장남이며, 그는 내게 19살 연상의 여인이다. 나의 아버지는 징글맞게(어머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의 여인을 고생시킨 분으로 저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을 나에게 각인시킨 장본인이시다.
… 시인인 나에게 시 외의 어떤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 모범적인 것은 견디기 싫은 것이지만 시 외적인 것으로 인해 시가 침해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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