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는 광고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요즘 회사에서는 해외 광고제 출품용 크리에이티브를 진행 중이다.

맥켄에서는 이 프로젝트를 smash라 한다.

진행중인 기존 캠페인으로는 깐느 광고제 등에서 상을 받을 정도의

크리에이티브를 하기 어려우니

반대로 깐느 광고제에서 상을 받을 정도의 아이디어를 내어

광고주에게 제안을 하고 집행 후 해외광고제까지 출품하는 것이 목표다.

 

광고회사이긴 하지만 그래도 엄연한 직장생활을 3년 가까이 하다 보니

내 스스로가 너무 평범해진다는 느낌에 괴로울 때가 많은 나는

주인 손에 들린 삼겹살 한 조각을 발견한 마당에 묶인 개처럼

끙끙거리는 마음이 들고 애가 탔다.

 

그 순간부터 광고 보다는 깐느가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내가 볼 때 글로벌한 빅 캠페인이 아니고서는

진지하고 성실한 아이디어 보다는

보다 크레이지한 아이디어가 깐느의 입성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그런 내 눈에는 회사 선배들이 내놓고

높은 분들이 선택하는 아이디어들이 성에 안 찰 수 밖에 없다.

좀 더 크레이지 해야 하지 않나?

좀 더 괴상(?)할 정도가 되어야 하지 않나?

 

그러나 해외 광고제란 괴상한 아이디어에 기특하다고 상을 주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아이디어에 대단하다고 상을 주는 것이다.

다만 깐느 수상작이나 아카이브에 실린 광고들을 보다 보면

훌륭한 평준화랄까

훌륭한 것만으로도 갑갑증이 풀리지 않게 되어버리고

괜찮은 아이디어는 노멀한 아이디어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 것 같다.

새로 나온 아카이브 한 권을 다 보아도

! 하는 감탄을 한 두 번도 채 하지 않게 된 것이고,

그것이 나 스스로의 평범화에 대한 불안과 겹쳐

평범함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욕구가 비뚤게 나오기도 하는 것 같다.

(깐느 수상작을 두루 살피면 훌륭함이 곧 평범하게 느껴지니까)

거기에 기존 광고주들의 이미 정해져 있는 상세한 가이드라인과

하향 평준화식 수정 요구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한 것도 일조를 했을 것이다.

 

아무튼 그러한 나의 아이디어는 자꾸 갈 길을 못 찾는 느낌을 갖게 되었는데

존슨즈베이비 등의 광고주와 나의 크레이지하고 싶은 욕구를

어떻게 하나의 아이디어로 만족 시킬 수 있느냐를 생각하다가

결국 어떻게도 되지 않았다.

 

크리에이티브는 제품에서 시작한다.

라는 말을 아주 오래 전부터 들어왔고 알고 있었는데

그것이 새삼 처음 듣는 말처럼 느껴지고

이제서야 처음으로 마음 속까지 와 닿았다.

제품이 크레이지 하지 않은데

순수와 보드라움을 추구하는데

그것을 크레이지한 아이디어로 만들고 싶어하니

잘 되지 않는 것이다.

 

제작팀의 모두가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을 두고 회의를 했는데

이때 느낀 것은

광고란 결국 비즈니스라는 것이다.

 

사실 나는 광고주를 감탄시키거나

제작물이 집행 되는 것보다는

깐느에서 상을 받는 게 제 1로 중요하게 느껴졌다.

다시 말해 광고가 집행 되어도 깐느에서 상을 못 받는다면

가치 없다는 마음 가짐이었다.

그런데 회의를 하다 결국 느끼게 되는 건,

역시 깐느보다는 비즈니스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회의 후의 맥켄의 입장을 추측하자면,

비록 깐느에서 상을 못 받더라도,

우리 마음에 드는 괜찮은 크리에이티브로 광고주를 설득해서 집행을 한다면

가치 있는 일인 것이다, 라는 것이다.

 

그런데 내 개인적 생각은 어떤 것이었느냐 하면,

이 아이디어가 광고주를 설득할 수도 있고 나름 괜찮은 아이디어더라도

깐느에서 상을 못 받을 것 같으면 굳이 애쓸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건 입장의 차이에서 비롯된 견해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나는 단지 사원일 뿐이고, 회사의 비즈니스가 지금보다 몇 천 만원

몇 억 원 정도 잘 되더라도, 내 삶은 영향 받지 않으니까.

회사의 비즈니스가 자신에 대한 회사의 대우와 즉각적으로 연결이 되는

임원급들과는 다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입장의 차이를 떠나서,

내가 광고를 하면서 광고 외적인 것을 계속해서 원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발견하게 되었다.

 

엄밀히 말해 깐느광고제라는 것은,

좋은 광고에게 상을 주는 행사가 아니다.

좋은 광고의 기준에는 분명 비즈니스 차원의 평가가 개입되어야 하고,

엄밀히 비즈니스의 성과를 따지다 보면

대부분의 지금까지 깐느 수상작들은 수상될 수 없었을 것이다.

 

깐느 광고제란 일종의 엔터테인먼트의 영역에서 평가를 하는 경우가 많다.

누가 얼마나 독특하고 참신한 생각을 통해

우리나 일반인들을 기쁘게 해주었는가.

어떤 캠페인이 어떤 식으로 광고라는 제한적인 틀을 벗어나서

새로운 접근을 모색하였는가.

이런 모습은 국제영화제의 모습을 닮았다.

영화제에서 관객수에 따라, 흥행 성적에 따라 상을 주지 않듯이

해외 광고제 또한 비즈니스 보다는

완성도와 참신함, 이벤트성에 높은 점수를 준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

깐느상에 집중할수록 광고주를 만족시키는 아이디어와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깐느라는 한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광고주 설득과 광고 집행이라는 비즈니스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어느 정도 각오해야 하지 않는가 하고 나는 생각했었다.

그러나 내 생각과 달리 이번 스매쉬의 궁극적인 목표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것이었고,

광고주를 설득하여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크리에이티브를 하고

운이 좋으면 해외 광고제의 상도 받는다는

그런 방향으로 진행되어 가고 있다.

 

이것은 분명 회사 입장에서는 훌륭한 프로젝트이고

크리에이터로서의 역량을 키우는 데도 매우 긍정적일 수 있다.

어차피 광고는

광고이기 때문이다.

 

자꾸 이것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데도

내 안의 어디에선가는 잘

못 받아들이는 걸 느끼기도 한다.

어쩌면 내 터전이나 출신 배경 자체가

비즈니스와는 거리가 먼 문학이어서 그런 지도 모르고

내가 즐겨 가는 술집이나 미용실들이 하나같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아버리고

나의 첫 번 째 핸드폰이었던 노키아와 두 번째 핸드폰이었던 팬택앤큐리텔이

순서대로 망해버리고

내가 처음 가입했던 통신사 017마저 망해버리는 것처럼

심지어 내가 처음 구입했던 컴퓨터가 현대컴퓨터였던 것처럼

내 성향 자체가 비상업적이어서 그런 지도 모르겠다.

 

광고는 광고일 수밖에 없다, 라고 받아들이려고 노력은 하지만

광고는 광고일 수밖에 없다, 라고 체념하려고 하지만

그럴 때마다 불쑥 하나씩 광고 이상의 광고를 목격하게 되고

어느새 어릴 적 주인이 구워주던 삼겹살을 떠올리며 목이 매는

한 마리의 개처럼 솔직하며 간절하게 어떤 광고 이상의 것을 원하게 되는 것이다.

 

지구 반대편(서양)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점프하자

반대편 지구에서(동양)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스와치 광고.

 

아이스크림 밴을 몰고 다니는 한 젊은이가 한 여름 한적한 주택가에서

홀로 기타를 치고 동네 사람들이 하나씩 끌려오는 리바이스의 안티핏진 광고.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어항 속에 물고기 한 마리가 들어있고

거대한 바다에 비가 내리자 어항에 물이 가득 넘치면서 바다 속으로 빠지며

어항 속 물고기가 바닷물로 흘러드는 오렌지 광고.

 

벼랑 끝의 여자의 다리 하나가 보이고 구두 한 켤레가 발끝에 흔들거리다

벼랑 밑으로 아득히 떨어지는 모습을 거꾸로 돌려 보여주는 에스콰이어 광고.

 

많은 사람들이 깐느 수상 광고에 감동하는 이유는

실제로 그 광고들이 감동을 줄 수 있기 때문이고

그 광고 자체가 광고라는 속성에 비추어봤을 때 모험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모험을 하고 싶고 모험 소년이었던 때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아마도 광고라는 분야는 그런 나의 욕구에 비교적 잘 맞는 곳이고

그래서 더 욕심이 생기는 지도 모르겠다.

 

아직 나는 어떤 게 좋은 광고다, 라고 판단해볼 만한 능력도 없고

누가 이런 게 좋은 광고다, 라고 말하더라도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그걸 하게 해주는 광고가

지금 내겐 가장 좋은 광고다.

다른 분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광고주를 위한 광고보다는 나를 위한 광고가 좋다.

심지어 그것이 나와 일부만이 '미친듯이' 좋을 뿐이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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