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틈
여기 희망에 대한 연체 대금으로 빛이 자꾸 빠져나가
언젠가는 텅 비어버릴 도시에서 반쯤 접힌 나이로
지하철을 탄다
(지하철 한 번 타기가 매번 이토록 피로하다)
중학교 때 꼭 한 번 팔베개를 해주고 싶었던 여자와
꼭 닮은 여자가 세뱃돈이라도 얻은 것 같은 데시벨의 목소리로 통화 중이다.
나에게 온 전화는 추석 이후로 없었던 듯하다.
여름은 잠시 장마 속에 갇혔다. 나 또한
지하철에 갇혔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지하철이 멈춘 뒤 땀 흘리며 지상 계단을 밟아 오르듯
여름도 곧 다시 헉헉거릴 것이다
군화를 신고 평화를 사랑하는 홍대 스트리트 풍의 젊은이가
96년식 3톤 트럭의 배기구 같은 목구멍으로
괄괄괄괄 뭔가를 말한다.
저 젊은이가 지금 뭔가 말하고 있는 것이라면
96년식 3톤 트럭 또한 10년 동안 뭐라 말해온 것이 있을 것이다.
청년이 쉼 없이 풍경을 고속도로로 만들어갈 때
나는 그저 종이 속에서 오늘을 구겨 넣을 틈새를 찾는다. 나 또한
그 틈에 있다고 말할지는 모르겠다.
다들 뭔가 바라며 살지 않는가 이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