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왕동주 1부,
가슴의 상처에선 더 이상 피가 나오지 않았다. 노부인의 상체는 땅에서 뽑힌 말뚝처럼 앉은 자세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늑대들은 밀림을집으로 삼고 있었지만, 단탈은 밀림 그 자체였다.
초옥 안은 어두웠다.
장옥평은 그 어둠 속에서 앉아 있었다.
장옥평의 두 눈은 반개해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한치 앞조차 볼 수 없는 어둠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둠 때문이라면 그 어둠이라도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반쯤 열린 그의 망막에는 아무것도 투영되지 않았다.
맛있어 보였다. 만일 혓바닥이 눈알에 달려 있다면 박한은 분명 ‘정말 맛있군!’이라고 감탄하면 행복해했을 것이다. 아! 혓바닥과 눈알은 불과 두 치밖에 떨어져 있지 않건만 그로 인해 박한은 행복으로부터 이천 리쯤 떨어져 버린 듯한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하늘과 땅이 각각 떠오르고 가라앉듯이, 산이 저절로 굳건하듯이, 바다가 스스로 양양하듯이, 죽음을 잊은 거북이 기뻐하지 않고 하루 해에 산화하는 하루살이가 슬퍼하지 않듯이.
순응이란 일방적인 회피와 다르다. 갈매기는 물고기를 낚아야 살고 범은 노루를 죽여야 사는 법. 맞서야 할 때엔 당당히 맞서는 것이 순응이었다.
강함을 구성하는 미덕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억세고 빠르며 무자비하고 치밀하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어우러질 때, 상대로 하여금 반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만드는 절대적인 강함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기회란 숫기 없는 손님과 같아서 문 앞까지 왔다가 되돌아간다고 한다. 또한 뒷머리가 없어서 일단 돌아서면 다시 낚아챌 수도 없다고 한다. 기회가 몸을 돌리기 전, 문을 활짝 열고 맞아들이는 것은 본인의 몫이었다.
삼십 년 묵은 주종 관계란 해질 때까지 빨아 놓은 옷감과 같았다. 감정이라는 물이 다 빠져 버린 지 오래여서 이제는 허연 천 같은 무덤덤함만이 남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상대를 어려워하는 듯 끝을 얼버무리는 두의의 말투는 단순한 버릇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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