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립
몇 시간이고 모니터를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모니터와 내 눈 사이에 다리가 놓여
쪼꼬만 글자들이 건너 다녔다
대부분 다리 너머 모니터에 건물을 짓듯 놓였다
떠나는 글자들을 바라보며 마치
강북이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누군가 어깨를 흔든다
우타다 히카루의 beautiful world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주제가가
그들의 운명처럼 흔들린다
그들도 최후를
밥 먹으러 가자는 소리를 들으며 맞이할까
일어선 자리
새까만 내 자리
내 엉덩이에 대해서 전문가인 내 자리
위에 은빛 클립 하나 떨어져있다
별처럼? 아니 작은 보석처럼? 아니
따뜻하고 연약한 똥처럼.
내가 드디어 일을 하다 똥을 싸는 경지
아니 클립을 싸는 경지에 이르렀다
뱅글뱅글 맴돌며
양수를 떠도는 웅크린 태아 같은
내 똥.
밥을 먹고 똥을 싸듯 일을 해서 싼 똥
상사 같고 월급 통장 같은
구불구불한 내 똥.
그때 보인다
사무용 책상 위
오늘 아침 인턴이 회사 물품창고에서 가져온
꾹꾹 눌러 담긴 클립 한 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