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설의 팡세, 에밀 시오랑, 문학동네, 2004(초판발행)

 

 

 

 

 

진리. 우리는 더 이상 그 무게를 감당하고 싶지도, 그것에 속거나 공범이 되고 싶지도 않다. 나는 쉼표 하나를 위하여 죽게 되는 세상을 동경한다.

 

 

 

 훌륭한 극작가는 살인 감각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엘리자베스 1세 시대 극작가들 이후로 등장인물을 죽일 줄 아는 극작가가 있었는가?

 

 

 

 세련됨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신학자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자신들의 주장을 증명할 수 없는 그들은 숱한 구분을 만들어 정신을 어지럽히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그들이 원하는 바이다. 천사를 십여종으로 분류하겠다는 발상에는 얼마나 뛰어난 재치가 필요했겠는가! 신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시간은 나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금지되어 있다. 시간의 리듬에 맞출 수 없으므로 시간에 매달리거나 관조하지만, 나는 결코 시간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은 나를 구성하는 성분이 아니다.

 

 

 

 만일 한 번이라도 이유 없이 슬픈 적이 있다면 자신도 모르게 평생을 슬프게 살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시시한 말을 진심으로 지껄일 때뿐이다.

 

 

 

 모든 물은 익사의 색깔을 띠고 있다.

 

 

 

 동양은 꽃과 체념에 기울어져 있었다. 우리는 그 동양과 대립하여 기계와 노력, 그리고 그 광적인 우울함을 내세운다.

 

 

 

 자신의 적들을 더 이상 선택하지 않는 순간, 자신이 갖고 있는 적들로 만족하는 순간, 젊음은 끝난 것이다.

 

 

 

 후일 나는 우리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주검이란 우리 안에서 준비되고 있는 주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이가 들수록 지적 능력도 줄지만, 젊어서는 그 매력과 재미를 느낄 수 없었던 절망하는 능력도 줄어든다.

 

 

 

 나는 시간 속에 정착하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은 살 수 없는 곳이었다. 영원을 향해 몸을 돌려보았다. 발을 딛고 설 수조차 없는 곳이었다.

 

 

 

 수많은 은유법 뒤에 약국으로 향한다. 위대한 감정들은 그렇게 메말라간다.

 

 

 

 시인으로 시작하여 산부인과 의사로 끝난다!

 

 

 

 꽃들의 간음죄를 슬퍼하며 그 뿌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봄보다 더 순결한 사랑을 상상해본다.

 

 

 

 우리가 음악을 통해 시간의 감촉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건 진정한 음악이 아니다.

 

 

 

 두려움을 느낄 때 우리는 미래로부터 오는 공격에 희생된다.

 

 

 

 고통을 과장할 능력이 없다면 우리는 고통을 견디지 못한다.

 

 

 

 즐거움이나 슬픔의 계기가 되는 구실이 바닥났을 때, 사람은 순수한 상태의 즐거움과 슬픔을 느끼는 단계에 이른다. 그렇게 정신병자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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