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디두르케, 비톨트 곰브로비치, 민음사, 2009(1판 12쇄)
우리는 자율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저 타인에 대한 함수일 뿐이다.
궁뎅이는 신체에서 가장 근본적인 부위고, 아주 친숙하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고, 행동의 출발점이 된다. 나무가 몸통으로부터 가지를 쳐 나오듯이, 바로 궁뎅이로부터 손가락, 손, 눈, 이, 귀 같은 여러 부위가 가지 쳐 나오는 것이고, 신체의 어떤 부위들은 섬세하고 기교적인 변형을 통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다. 얼굴은(목구멍이라고 불러도 좋다.) 궁뎅이에서부터 꽃피어 난 나무 꼭대기다.
작품을 구성하는 모든 부분들이 극적인 해결을 위한 단일성으로 정확히 수렴되는 바로 그때, 바로 그 순간에 전화벨이 울리든가 아니면 파리 한 마리가 날아다니는 바람에 독서가 중단될 수 있지 않은가? 또 만일 책을 읽고 있는데 형이 방에 들어와 말을 시키면 어떻게 되는가? 작가의 고귀한 작업이 바로 형제 한 사람, 파리 한 마리, 혹은 전화 한 통 때문에 망쳐지는 것이다. 제기랄, 빌어먹을 모기들아, 어째서 방어할 꼬리도 없는 종족에게 달려드는 거냐?
그 어느 누가 이 자질구레한 실존에 맞서 위대함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삶의 자질구레한 현실들은 우리를 파괴한다. 말하자면 거대한 용한테 맞서려고 하는 사람이 작은 아파트의 개 앞에서는 설설 기는 상황인 것이다.
어머니는 아이에게 원칙을 주입시키는 데서 끝나지 않고, 아이가 그 원칙들에 짓눌리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그것을 피하는 법도 가르칠 것이다.
밤은 너무 자주 우리의 낮에 불쑥 끼어든다!
우리가 야비하게 아름다움을 엿볼 때면, 우리 시선의 일부는 그 아름다움에 달라붙어 버리니까 말이다.
편지들 중에 학교의 남자 아이들이 보낸 연애편지가 있었다. 그 편지들은 고대와 중세의 역사가 전해 준 그 어떤 편지보다도 더 비통하고 불쾌하고 짜증스럽고 성가시고 뒤처지고 유치하고 우스꽝스럽고 모욕적이었다.
나를 보더니 므워드지아코프 씨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두 뺨 위로 공포가 깃들고 있다. 내가 엮어낸 물레방아, 스캔들이라는 물레방아에 자기가 지금 물을 부어 돌아가게 만들고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사람들은 늪 속의 물고기처럼 인간적인 것 속을 헤엄친다.
주인들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하층 계급을 빨아먹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린애와 같다. 피만 빨아먹는 게 아니라 젖도 빨아먹는 것이다.
진짜 세계의 대용품 같은 세상,
나는 조시아와 단둘이 있다. 하늘엔 절대적인 지속 시간 동안 창공에 고정된 것 같은 궁뎅이가 떠 있다. 팽팽해지고, 광선을 발하며, 어린애처럼, 세상을 어린애로 만들며, 닫힌 채로, 육중하게, 그 자체의 힘으로 더욱 강해져, 하늘 꼭대기에 떠 있는 궁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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