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로맹 가리, 문학동네, 2009(2판 5쇄)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유사 이래 하늘로 올라간 수많은 영혼들을 생각하면 울어 마땅하다. 얼마나 막대한 에너지원이 낭비된 것일까. 영혼이 승천하는 순간 그 에너지를 잡아둘 수 있는 댐을 건설했다면, 지구 전체를 밝힐 만한 에너지를 얻을 수도 있었으리라. 머잖아 인간은 송두리째 활용되리라.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꿈들이 전쟁과 감옥을 만드는 데 이미 쓰이지 않았던가.
류트
그녀가 평생 해온 걱정 중의 하나는 자신이 이따금 어쩔 수 없이 그에게 보내는 숭배의 시선을 그가 어느 날 갑자기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들켜버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제 말은 삼십 년 동안 완벽한 외교관의 겉모습 속에 예술가가 숨어 있었다는 거죠. 아빠는 의지를 동원해 그것이 드러나는 것을 막아왔지만 이제 그것이 복수를 하고 있는 거라구요. 아빠에게 재능이 있다고 전 확신해요. 아빠 안에는 아주 훌륭한 화가나 조각가가 평생 동안 갇혀 있었어요. 그래서 이제 만나는 예술 작품 하나하나가 아빠에게 비난이나 후회로 느껴지는 거예요.”
몰락
술을 많이 마시긴 했지만, 그가 그렇게 되는 대로 수다스럽게 속내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는 것은 술기운과 상관이 없었다. 그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인지조차 확실치 않았다. 비행기가 로마에 가까워질수록 눈에 띄게 커져가는 감정적인 동요 속에서 그가 사실은 소리내어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이따금 들었던 것이다.
본능의 기쁨
그들은 속속들이 흉악해요. 흉악하다는 말이 딱 맞아요. 내 솔직한 의견을 말하자면, 인간이란 아직 존재하지 않습니다. 새로 만들어내야 하는 거예요.
역사의 한 페이지
“노파가 자네한테 와서 항상 혀를 내보이다니, 이상한데……”
“이상할 것 없어요. 내가 그 여잘 목졸라 죽였거든요.”
“아! 그랬군.” 즈보나르가 대답한다.
그가 하품을 한다.
“그렇다면 어느 날 그녀가 엉덩일 보여준다면, 자넬 용서했다는 뜻이겠군……”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
“저놈은 일 년여 동안 자넬 매일같이 고문한 자가 아닌가! 저놈은 자넬 괴롭히고 학대하지 않았나! 그런데 경찰을 부르는 대신 저 작자에게 매일 저녁 먹을 것을 갖다주다니? 그럴 수가 있나?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희생자의 얼굴에 떠오른 교활한 표정이 뚜렷해졌다. 아득한 과거로부터 들려오는 아주 오래된 목소리가 재봉사의 머리카락을 쭈뼛 곤두서게 했고, 가슴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가 다음번에는 잘해준다고 약속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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