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락, 정끝별, 창비, 2009(초판 2)

 

 

 

 

 

 

 

 

 

 

통속

 

 

 서두르다를 서투르다로 읽었다 잘못 읽는 글자들이 점점 많아진다 화두를 화투로, 가늠을 가름으로, 돌입을 몰입으로, 비박을 피박으로 읽어도 문맥이 통했다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네살배기 딸도 그랬다 번번이 두부와 부두의 사이에서, 시치미와 시금치 사이에서 망설이다 엄마 부두 부쳐준다더니 왜 시금치를 떼는 거야 그래도 통했다

 중심이 없는 나는 마흔이 넘어서도 좌회전과 우회전을, 가로와 세로를, 성골과 진골을, 콩쥐와 팥쥐를, 덤과 더머를 델마와 루이스를 헷갈려 한다 짝패들은 죄다 한통속이다

 칠순을 넘긴 엄마는 디지털을 돼지털이라 하고 코스닥이 뭐예요?라고 묻는 광고에 사람들이 왜 웃는지 모르신다 웃는 육남매를 향해 그래 봐야 니들이 이 통속에서 나왔다 어쩔래 하시며 늘어진 배를 두드리곤 한다

 칠순에 돌아가셨던 외할머니는 이모를 엄니라 부르고 밥상을 물리자마자 밥을 안 준다고 서럽게 우셨다 한밤중에 밭을 매러 가시고 몸퉁에서 나온 똥을 이 통 저 통에 숨기곤 하셨다

 

 오독이 문맥에 이르러 정독과 통한다 통독이리라

 

 

 

 

 

 

 

 

오리엔트 금장손목시계

 

 

11 39 28에 아버지가 다녀가셨다

 

훌쩍 팔순을 넘기신 지 오래인 아버지가

큰오빠 부축에 기별 없이 들이닥치셨는데

자고 갈란다, 막내딸 출가 십오년에 처음 일이었는데

숟가락 하나 더 놓은 저녁상을 달게 물리시고는

사진 한 장 찍어둬라, 양품에 손녀딸 안으셨는데

백세주 한병에 겨우신 듯 잠자리에 드셨는데

해소 천식에 밤새 누우셨다 앉으셨다

보타진 뒷목줄기를 어둠에 꺾어 묻곤 하셨는데

무량타 한장 더 찍어둬라, 아침을 드시고는

손녀딸 인사에 자욱이 말씀 잇지 못하셨는데

 

아버지가 11시 39분 28 풀어놓고 가셨다

 

막내오빠가 첫월급 기념으로 사드렸던

이제는 아침이 되어도 해가 뜨지 않는

오래된 오리엔트의 시계(視界)

하루 두번 11시 39분 28 밥먹듯 돌았던

오매불망 오리엔트의 금도금

그냥 둬라, 방향을 잃고 두루 두절된

아버지의 고장난 유산

한밤이면 들이닥치는 천식의 유전

 

사진 속 아버지는 11 39 28초중이시다

 

 

 

 

 

 

 

 

 

 

 

 

 

 

 

 

 

 

 

'others'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통을 달래는 순서 - 김경미  (0) 2009.11.13
슬픔  (0) 2009.11.13
은혼 28권 - Hideaki Sorachi  (0) 2009.11.12
수혹성연대기 1권 - MASARU OHISHI  (0) 2009.11.12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2권, Shion Miura, Sorata Unno  (0) 2009.11.1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