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종이
백지는 속도 하얄까 싶어
종이를 찢었다
하얀 종이는 속도 하얗다
하얀 것들로 속을 채웠다
그러나 하얀 것들도
빛이 없는 저 속에선 가슴이 시꺼맸을 것이다
자신들이 정말 하얄지
자신 없었을 것이다
울렁울렁 소리 내는 한 장의 종이
앞과 뒤, 위와 아래
빈틈 없이 하얀 종이는
어쩐지 보면 놀려주고 싶어지는
옛 친구의 그것이다
너가 아무리 하얗다고
너에게 얼굴을 묻을 순 없다
밤이 뼈를 추스려 돌아갈 때
시간이 알몸임을 처음 알았다
속까지 하얀 알몸은
예전 교실에 남기고 온 완벽한 풍경
아름다운 그애를 닮았다
그애가 아직도 그곳에 있다고
시간을 찢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