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 2010 봄
동서양의 별자리와 우리의 별자리
천문학에서는 별을 ‘중신부의 핵융합 반응에 의해 스스로 빛을 내는 천체’라고 정의하며, ‘별’보다는 ‘항성恒星’이라는 학술 용어를 선호한다.
별
정진규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대낮에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별들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에게만
별들이 보인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만
별들을 낳을 수 있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어둡다
한국성사략
서정주
천오백 년 내지乃至 일천 년 전에는
금강산을 오르는 젊은이들을 위해
별은, 그 발밑에 내려와서 길을 쓸고 있었다.
그러나 송학宋學 이후以後, 그것은 다시 올라가서
추켜든 손보다 더 높은 데 자리하더니,
개화 일본인들이 와서 이 손과 별 사이를 허무虛無로 도벽塗壁해 놓았다
그것을 나는 단신單身으로 측근側近하여
내 육체의 광맥鑛脈을 통通해, 십이지장까지 끌어갔으나
거기 끊어진 곳이 있었던가,
오늘 새벽에도 별은 또 거기서 일탈했다. 일탈했다가는 또 내려와 관류灌流하고 관류貫流하다간 또 거기 가서 일탈한다.
장을 꿰매야겠다.
허기
송상욱
처음의 웃음을 다 웃어버린 하현달이
내 몸 밖의, 혼 같다
먼발치 어디서 어둠을 씻는 강물소리 들린다
산 높이 땅이 우는
미루나무 숲들이 무어라 어둠 이야기를 하는
산모룽이 위에는 그늘의 뼈 같은 새 지금도 떠 있다
황소가 운다
벌판이 움직인다
껍질뿐인 어둠이 헛숨을 내쉬는 소의
입김에 젖는다
누더기를 걸친 사람이 밭고랑 가에서
지게에다 쟁기를 얻는다
어지럼병을 앓던 나는, 풀만을 먹고 살이 퉁퉁 찐 소 엉덩이 뒤를 따라가다
들판에 지천으로 자라 있는 풀을 본다
걷는 발바닥 밑이
슬픈 벼랑이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살아온
나는
산 아래 바위 속 깊은 곳에서 적막이 새어나오는 소리를 듣는다.
배가 고플수록, 바위 속에서 새나오는 적막의 소리는 맑다
낙엽들이 헛소리처럼 흩날리는, 이런 때
까마귀들이 하늘귀신인 양 날아와
어둠 이야기를 하던 그 미루나무 숲 꼭대기 위에
내려앉는다
혼이 고픈 소문처럼
나는, 나뭇가지 끝
하늘 죽은 새들이
날아가고 없는, 허공을 보는 습관으로 늙어버린 날들이
병든 솔방울처럼 매달려 있는
소나무 위에
실없이, 머나먼 밤들을 헛돌아 온
궁동窮冬살 에이는 보름밤, 그 밤도 또 실없이
정적의 꿈 떠 있는
달빛이 환한 밤엔 허기를 느낀다
주문진은 내게 새겨져 있지 않다
권현형
주문진에서 추상적인 시간이란 없다. 내가 기억하는 주문진의 시간은 문어대가리처럼 꾸물텅거리는 시간을 고무 다라이에 담아 머리에 이고 가는 생물의 시간이고 몸의 시간이다.
생선과 내복을 빨랫줄에 함께 말려 비린내를 먹고 입는 사람들, 파는 사람들, 비린내에 절은 몸이 재산인 사람들, 바람과 싸우고 해일과 싸우고 파고와 싸워 살아남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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