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라뇨, 로베르트 볼라뇨, 호르헤 볼피 외, 열린책들, 2010(초판1쇄)
공적인 자리에서 까는 게 사적인 자리에서 씹는 것보다 당연히 더 위험한 일이다. 사석에서 씹는 일이야 작가들이 아주 즐기는(작가가 아닌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스포츠가 아니던가.
볼라뇨는, 내 기억이 맞는다면, 카프카가 작가라면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글을 썼던 것 같다. 죽은 사람처럼 글을 써야만 한다. 이와 관련해 자크 리고 Jacques Rigaut가 덜 급진적인 다다이스트 동료들에게 내뱉었던 욕설이 생각난다. <네놈들은 천생 시인 나부랭이고 나는 죽음을 옆에 끼고 사는 놈이다.> 죽은 자들은 다른 건 몰라도 진지함 하나만큼은 알아줘야 한다.
다른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을 숭배하는 소수이지만 나날이 세력을 확장해 가고 있는 무리, 문학 병에 걸린 환자, 현실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자기반영주의자autista>… 볼라뇨는 <주의자>들에 매우 감탄하곤 했지만(그 자신도 <밑바닥현실주의자>였고 <극렬사실주의> 또한 창안하지 않았던가) 당연히 항상 그들을 비웃었다.
지금까지 볼라뇨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두 개의 단어가 반복해서 등장했다. 하나는 슬픔이고 또 하나는 용기이다. 하지만 이 세 번째 단어를 제외하면 다른 두 요소가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바로 농담이다.
영어권 세계에서는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지만, 라틴 아메리카에서 글쓰기와 급진적 정치관은 항상 서로 맞물려 있다. 20세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작가가 된다는 것은 곧 혁명가가 된다는, 또는 반동이 된다는 의미였다.
만약 작가가 이런 정신에서 글을 쓰고 그 글처럼 산다면, 독자들도 자연히 그 절박함을 느끼고 그렇게 살 것이라고 그는 즐겨 말했다. <시인이 뭔가에 사로잡히면 독자도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그의 시집 『셋』에 실린 어느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나는 내가 늙고 아픈 탐정이기를 꿈꾸었고, 오랫동안 실종된 사람들을 찾아 헤매 다녔다. 때로 거울 속에서 나 자신을 보게 될 때면 나는 로베르토 볼라뇨를 알아보았다.>
그가 곧잘 험담한 작가는 이사벨 아옌데Isabel Allende였다. 파울로 코엘료Paulo Coelho에 대해서는 <브라질 일일연속극의 마법사 모습으로 나타난 바르뷔스와 아나톨 프랑스의 잡종>이라고 했다.
멕시코시티는 청소년기 볼라뇨에게는 <외떨어진 행성, 모든 것이 가능한 도시> 같았다. 도착한 지 1년 만에 그는 시인이 되기로 결심하고 학교를 그만두었다. 훗날 그는 그 이후 자신의 독학에서 공백이 생긴 것은 그가 일부 책들을 훔치지 못하게 막았던 서점들의 서가 배치 때문이라며 탓하곤 했다.
볼라뇨는 정치적 폭력에 관해 직접적으로 글을 썼지만, 그 방법은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비난했던 <탄핵> 문학과는 완전히 달랐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글에서 폭력은 <우연한 방식으로, 폭력이 모든 곳에서 작용하는 그런 방식으로>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먼 별』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화자와 그의 동료 죄수인 미치광이 노르베르토는 그들이 갇혀 있는 체육관에서 비행기 조종사가 첫 번째 <시>의 비행을 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Q. 죽은 다음에 다시 지구에 태어난다면 어떤 사람이나 물건으로 돌아오고 싶습니까?
A. 가능하다면 몸무게가 채 2그램도 되지 않는, 새 중에서 가장 작은 새인 벌새가 되어 돌아오고 싶습니다. 아니면 어느 스위스 작가의 책상. 아니면 소노라 사막의 도마뱀.
Q. 완전한 행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A. 나의 <불완전한> 행복은 아들과 함께 있는 것, 그리고 아들이 잘 지내는 것입니다.
완전한 행복 같은 걸 꿈꾸다 보면 속박이나 강제수용소 같은 걸 탄생시키게 되죠.
Q. 가장 큰 회한이라면?
A. 너무 많습니다. 나는 항상 회한과 함께 잠자리에 들지요. 내 회한은 글을 쓸 줄 알아서 나랑 같이 글도 씁니다.
Q. 사회적으로 가장 과대평가되는 덕목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성공(출세). 하지만 성공은 절대로 덕목이 아닙니다. 그냥 운일 뿐이죠.
『2666』은 심연 위에 놓여있는 세기말적인 소설이다. 볼라뇨 자신도 『괄호 치고』에서 이렇게 말한다. <훌륭한 글쓰기란 무엇인가? 늘상 그래왔던 것이다. 어둠 속에 머리를 처박은 채 허공으로 뛰어내릴 줄 아는 것. 문학은 기본적으로 위험한 일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 끝없는 심연과 마주한 절벽의 가장자리를 달리는 것.>
<칠레에서 아무 돌멩이든 뒤집어 보라, 다섯 명의 시인이 기어나올 것이다.> 작가 파블로 네루다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만약 책에 있는 표현대로 <진정 여행을 떠나려면 여행자는 잃을 게 없어야 한다>면, 볼라뇨는 흠잡을 데 없는 여행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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