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마음산책, 2009(121)

 

 

2006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다.

201021쇄본, 와우.

 

 

 

 

 

 

 

 나는 영웅이 아니다. 한 아이에 대한 애정이 있었을 뿐이다.

나는 그 아이의 죽음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 손에 내 집념을 맡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 말고는 아무도.

 

 

 

 눈雪을 읽는 것은 음악을 듣는 것과 같다.

눈에서 읽은 내용을 묘사하는 것은

음악을 글로 설명하려는 것과 같다.

 

 

 

 다른 한 사람은 어딘가 살로 파고든 발톱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었다. 납작하고 딱딱하며, 짜증스러운 신경질로 가득 찬 사람.

 

 

 

 경찰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율리아네에게는 기댈 수 있는 어깨를 빌려준 뒤 그녀를 친구 집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느라 나의 슬픔은 내내 왼손에 꼭 틀어쥐고 있었다. 이제는 내가 슬픔에 무너질 차례다.

 

 

 

 삶의 의미에 대해서 고민했지만 의미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그런 날이었다.

 

 

 

 나는 해마다 이맘때쯤에는 세 시간이나 지속되는 석양을 바라보았다. 막 떠나려고 하는 그 순간에 태양은 그제서야 이별을 주저하게 하는 특성들을 이 세상에서 발견한 듯 했다.

 

 

 

 이전에도 수없이 많이 잡았다. 수많은 새들이 죽었고, 진흙 속에서 요리되었으며 사람들에게 먹혔다. 얼마나 많이 잡았던지 기억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나는 갑자기 터널 같은 그들의 눈을 보았다. 그 터널의 끝에는 새끼 고래가 있었다. 이번에는 그 새끼 고래의 눈이 안쪽 멀리 이어졌다.

 

 

 

 그린란드에서 익사한 사람은 다시 떠오르지 않는다. 바다의 수온은 4도 미만이고, 그런 온도에서는 부패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여기서는 위 속의 음식물이 발효하지 않는다. 하지만 덴마크에서는 발효된 음식물 때문에 자살한 사람들의 몸속에 새롭게 부력이 생겨 시체가 바다 표면에 떠올라 해변으로 밀려오게 되는 것이다.

 

 

 

 그게 얼마나 오래된 거라고 했어?”

 이사야가 물었다.

 “4만 년이라는데.”

 그럼 이제 곧 죽겠네.”

 아마 그렇겠지.”

 스밀라가 죽으면, 내가 스밀라 가죽을 가져도 돼?”

 좋아.”

 

 

 

 널리 알려진 생각으로는 아이들의 마음을 열려 있고, 진정한 내적 자아는 밖으로 저절로 스며나온다고 한다. 그런 말은 죄다 틀렸다. 아이보다 더 비밀스러운 사람은 없으며, 아이보다 더 절실하게 비밀을 지켜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도 없다. 그것은 항상 아이들을 깡통 따개로 따서 안에 뭐가 들어 있나 보면서 그 안을 더 쓸모 있는 잼으로 바꿔줘야 하는 게 아닌가 궁금해하는 세상에 대한 대응이었다.

 

 

 

 나는 긴 부츠를 신고, 빨간 터틀넥 스웨터를 입었으며, 그뢴란디아 제의 물개가죽 코트, 스코티시 코너에서 산 치마를 입고 있었다. 나는 옷을 잘 입고 있으면 변명하기가 훨씬 쉽다는 사실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린란드에는 감옥이 없다. 코펜하겐과 누크의 법 집행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덴마크에서라면 감옥에 갇힐 만한 범죄도 그린란드에서는 벌금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그린란드의 지옥은 자물쇠로 잠근 방이었다.

 

 

 

 내가 공간적 자유에 대해서 느끼는 방식은 내가 아는 바 남자들이 자기 남근에 대해서 느끼는 방식과 같다. 나는 공간적 자유를 아이처럼 안고 있으며 여신처럼 숭배하고 있다.

 

 

 

 인생의 어떤 것도 단순히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가는 통로가 될 수는 없다.

마치 남겨놓고 가는 유일한 것인 양 매 걸음을 떼어야 한다.

 

 

 

 응급실에서 수술용 메스를 몰래 가져와 후드 속에다 숨겨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칼로는 태양 아래 놓인 버터처럼 살을 자를 수 있다.

 

 

 

 그는 분자까지도 광활한 공허 속에 빠져버린 사람과 절망적인 사랑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의 사랑은 희망을 포기해버렸다. 하지만 그 희망은 그의 기억 속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덴마크에 도착해서 여섯 달이 흐를 때까지는 절대 모국어를 잊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언어는 생각하고, 과거를 기억할 때 쓰는 언어인 것이다.

 

 

 

 “… 그 사람은 롤스로이스를 북대서양에 가라앉혀달라고 유언장에 남겼어요. 스웨덴 배우 괴스타 에크만이 배 갑판에 서서 햄릿의 독백을 읊는 동안요.”

 

 

 

 마지막에서 두번째 신문 기사는 1949년 신문에서 찾아낸 것이었다. 거의 글로 매춘을 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 기사였다.

 

 

 

 이해는 언제나 비언어적이다. 무엇이 낯선 것인지 이해하게 되는 순간, 설명하려는 충동을 잃어버린다. 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그 현상과 거리를 두는 것이다.

 

 

 

 내가 카나크에 대해서 나 자신에게든지 다른 사람에게든지 얘기하기 시작하면 결코 한번도 진정으로 내 것이 아니었던 것을 다시 한번 잃어버리게 된다.

 

 

 

 어쨌거나 나는 벌써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길가에 버려진 아이, 벌써 산전수전다 겪었지만 그 방법을 배우고 싶지는 않았던 사람.

 

 

 

 모리츠가 거기 가는 이유는 음식 때문이고, 에고를 자극시키는 가격 때문이며, 건물 한쪽 전면의 유리창 사이로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잘 보이는 게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베냐가 거기 가는 이유는 창으로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자기를 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은 빈 탄피 같았다.

 

 

 

 나한테서 좋은 점은 별로 발견할 수 없을 거야. 나는 너무 술을 많이 마시지. 담배도 너무 많이 피우고. 일도 너무 많이 하고. 내 가족은 나를 무시하고. 어제 욕조에 누워 있을 때 우리 집 큰아이가 와서는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하더라고. ‘아빠, 아빠는 어디 살아요?’ 내 인생은 값어치가 별로 없어. 그렇지만 얼마가 되든 간에 푀일에게 그만큼의 빚은 지고 있어.”

 

 

 

 나는 마음속 깊이, 사물을 파악하려는 노력은 맹목성으로 이어지고,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은 타고난 잔인성을 가지고 있어서 진심으로 인식하려는 것을 지워버린다는 것을 안다.

 

 

 

 다시 기차를 탔을 때는 이미 어둑해져 있었다. 바람이 가벼운 눈, 피르후크를 싣고 왔다. 내 마음은 마취제를 맞은 듯했지만 그 눈을 구분할 수는 있었다.

 

 

 

 그린란드 사람들은 미안해요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굳이 귀찮게 그 말을 덴마크어로 배울 생각을 한 적도 없었다.

 

 

 

 “…나도 지나간 시대의 인간이지. 배들은 나무로 되어 있고 선원들은 강철로 되어 있던 시절 말야….”

 

 

 

 죽음이 나쁜 것은 미래를 바꿔놓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를 기억과 함께 외로이 남겨놓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에 빠진 적이 없다. 그러기에는 지나치게 명확하게 사물을 바라본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광기의 한 형태다.

 

 

 

 알겠지만 내가 처음 항해를 시작했을 때 배를 조종하는 사람은 선장이었고 시간은 달력으로 쟀어. 운항중에 얼음이 끼면 속도를 줄였지. 항로를 바꾸거나. 아니면 배를 돌려 바람을 타고 항해하거나. 그렇지만 지난 몇 년간 사정이 변했어. 이제 결정은 선박회사가 하고 배를 조종하는 건 대도시의 사무실이야. 그리고 이걸로 시간을 측정하지.”

 그는 자기 손목 시계를 가리켰다.

 

 

 

 하지만 우리는 확실히 어떤 특정 시간까지 어떤 지점에 도달하기로 되어 있는 거야. 그 사람들이 루카스에게 계속 가라고 명령을 내린 거지. 그래서 지금 그렇게 하고 있는 거고. 루카스는 자기 솜씨를 잃었어. 어쨌거나 이 얼음을 뚫고 가야만 한다면 우리를 당장 갑판에 불러모을 이유는 없다고….”

 

 

 

 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냉담해질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긴장할 수는 있겠지만 냉담해질 수는 없다. 삶의 본질은 온기다.

 

 

 

 내게 있어서 태양은 언제나 천체의 광대였다.

 

 

 

 그것은 리볼버 권총이었다. 볼레스터 몰리나 이누낭기초크. 아르헨티나 본사의 허가 아래 누크에서 제조된 것이다. 목적과 디자인 사이에는 합치되지 않는 점이 있었다. 악마가 그렇게 단순한 형태를 띨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죽음은 언제나 낭비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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