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 탐닉, 세노 갓파, 씨네이십일, 2010(1판2쇄)
어려운 것을 쉽게.
쉬운 것을 깊게.
깊은 것을 유쾌하게.
“이건 사자자리의 AD성(星)이 폭발해서 서서히 식다가 다시 폭발하는 빛의 변화를 그래프에 담은 건데, 이걸 음의 소재로 이용해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거예요… ”
“한 마디로 직업이 뭐죠?”
“음의 상(像)을 만든다, 음향의 공간을 창조한다, 그런 의미로 ‘사운드 퍼포머’라고 하면 어떨까요?”
그는 작년(1984년) 가을에 오스트리아에서 ‘우주를 체험하는 음의 구름’을 창조하는 장대한 퍼포먼스를 벌여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연극은 대단히 사치스러운 예술 같아요. 살아 있는 사람이 관객들의 눈 앞에서 직접 연기하니까 말이에요.”
사람을 ‘단념할 수 있는 사람’과 ‘단념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나눈다면 갓파 씨는 망설일 것 없이 ‘단념할 수 있는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것은 뭔가 집착하는 게 있다는 것이다. 집착하는 대상이 있기 때문에 단념할 수 있으며, 집착하는 게 없으면 단념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수밖에 없다.
말을 소중히 여기는 그녀는 텔레비전 드라마보다 라디오 쪽이 맞는 사람이다.
“… 자기가 입어서 마음에 드는 옷을 입는 게 그 사람을 가장 아름답게 보이게 해요. 어쨌든 입는 것으로부터 좀 더 해방되었으면 좋겠어요.”
“정부가 교육에 참견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요. 교육이란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니, 권위 따위는 필요 없어요…”
지진이 일어나면 피해가 크다. 하지만 지구도 살아 있기 때문에 몸을 떨거나 기침을 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친하게 지내는 수밖에 없다.
사이타마 현 우라와에 살 때 국도의 아스팔트 포장 공사가 있었다. 당시에는 아스팔트처럼 까맣고 까칠까칠한 소재가 희귀했다. 그는 아스팔트 색깔과 그 느낌을 캔버스에 이식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여 결국 참지 못하고 한밤중에 곡괭이를 들고 나가 도로를 팠다. 하지만 손에 넣기 직전에 경찰에게 적발돼 체포당해 유치장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림을 그리는 데 그 아스팔트의 혼이 좀 필요했어요.”
스다 씨는 조사 중에 그렇게 말했지만 경찰은 이해하지 못하고 화만 냈다고 한다.
“국도를 훔치려는 놈이 세상에 어디 있나?”
인도에 갔을 때 강물에 들어가 목까지 몸을 담가봤다고 한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는데, 강 속에 들어가면 육지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인다.
정신없이 어질러놓은 책상 이야기를 하니까 한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집에 도둑을 맞은 한 노선생이 있었는데,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도둑이 건드리지도 않은 책상을 보며 “이렇게 엉망으로 만들어놓다니.”라고 했다.
그는 언제나 거대한 벽면에 초벌그림 없이 에어브러시로 구름을 그리기 시작한다.
“바람의 방향이나 태양의 위치를 느끼면서 마치 제가 구름이 된 것 같은 마음으로 그려요. 억지로 그리려고 하면 구름이 하늘에 뜨지 않거든요.”
“죽음이란 심장이 멈출 때가 아니라 사람이 지닌 개체로서의 캐릭터가 끝날 때, 즉 뇌사를 인간의 죽음으로 판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한 가지, 뇌사와 식물인간 상태는 전혀 달라요…”
“젊다기보다 아이 같다는 말이지? 아이들은 자기가 궁금한 것에 항상 ‘왜?’라는 의문을 갖게 되어 있어. 어른이 되면서 점점 궁금한 것들이 사라지잖나. 실은 잘 모르는 것도 아는 척을 하게 되니까. 그렇게 되는 인간은 빨리 늙을 수밖에 없지…”
‘도예작품의 가치를 꼭 어느 시대의 유물인지로 결정해야 하나?’라는 의문을 품었던 것을 아직도 기억한다.
“물레는 아주 간단해. 자전거 타는 정도의 연습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지. 정작 어려운 건 가마에서 도자기를 구워내는 거야. 불은 마녀와 같아서 생각한 대로 잘 되지 않거든.”
“매니저는 연예계와 관계 없는 대졸자로 채용한다고 들었습니다.”
“맞아, 라쿠고 연구회에 있었다든가 연예인 지망생이었던 사람들은 안 돼. 연예인들은 팔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품이나 마찬가지인데 연예인에 대한 동경심이나 품고 있는 사람들에게 맡길 수는 없지. 매니저도 전문직이거든.”
“내가 가르치는 건 아주 작은 것에 불과해요. 배우나 작가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감동하는 것’이에요….”
“어렸을 때 그림을 좋아해서 자주 낙서를 하던 사람들도 어른이 되면 그리지 않아요. 그건 초등학교에서 그림에 점수를 매겨 평가하기 때문이에요. 그림은 표현 언어와 같아서 무언가를 그리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잘난 척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지금 미술계는 문화훈장이나 예술원회원을 정점으로 한 권위주의에 의해 구성되어 있거든요. 저는 그 부분이 이해가 안 돼요. 무슨 무슨 상을 받고 감사해하는 풍조는 어딘가 좀 이상하지 않나요? 그런 곳에서 그림을 그리기보다 어부가 물고기를 잡듯이, 농부가 쌀농사를 짓듯이 그림을 그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 진짜 직업은 술꾼이고, 하는 일은 작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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