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차일드, 존 하트, 랜덤하우스코리아, 2011(1판1쇄)
자글자글 끓는, 새까만 흉터 같은 아스팔트 도로가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시골 땅을 가르며 쭉 뻗어 있었다.
헌트가 마룻바닥에 한 발을 질질 끌자 곰팡이와 먼지가 훅 일어나더니 다시 가라앉았다. 지하실에서는 흙과 축축한 콘크리트 냄새가 났다.
“뭘 기대했는데?” 요아컴이 물었다.
헌트는 집 뒤쪽에 있는 거실 밑으로 통하는, 배선과 배관을 위해 만든 좁은 공간을 들여다봤다.
“행운을 바랐죠. 단 한 번이라도.”
“행운, 불운, 그런 건 없어.”
“그 말을 티파니에게 해봐요.”
어떤 인간이 그 소녀를 억지로 차에 태운 후 열다섯 시간이 지났는데 그녀를 찾을 수 있는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집의 안팎과 마당을 이 잡듯이 뒤졌지만 어떤 단서도 찾지 못했다.
또 1분이 지나갔다. 기차가 오고 있다는 첫 조짐이 밀물처럼 밀려왔는데 너무 얇아서 투명해 보일 정도였다.
등으로 땀이 흘러내렸다. 입속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말라 있었는데 그 약들을 입에 넣으면 어떻게 될지 느낄 수 있었다. 힘들게 꿀꺽 삼키고 짧지만 쓰디쓴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가면. 하지만 눈을 들어 거울을 보자 다시 그 마분지를 오려낸 것 같은 눈이 보였다. 그 눈은 마치 복사본의 복사본처럼 빛깔이 바래 있었다.
조니는 숲을 등지고 서 있었는데 앞에 좁은 빈터가 있었다. 그곳은 나무들의 바다 안에 있는 상처 자국 같은 곳이자 하나의 흠이었다.
프리맨틀의 집이 앞의 오른쪽에 나타났다. 캄캄한 땅에 고정돼 있는 어두운 폐선 같은 집이었다.
“넌 내가 가진 유일하게 좋은 것이야, 조니. 빠질 순 없지.”
그녀의 고통에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아 헌트는 시선을 돌렸다. 전에도 그녀가 용기를 냈다가 그 용기가 사그라지는 걸 봤다. 그건 마치 아메리카삼나무가 쓰러지거나 강이 죽는 걸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둘 다 각자만의 생각에 빠져 입을 다물었다. 헌트는 조심스럽게 먼지를 턴 분홍색 동물 인형들, 잘 꾸민 옷들, 액자에 넣은 사진들을 모아놓은 박물관과도 같은 침실에서 통곡하는 부모들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렸다. 그는 그 부모들에게 조그만 마음의 평화와 함께 그간의 고통을 끝내주고 싶었다. 아이들의 남은 유골을 집으로 보내주고, 부모들에게 그 죄를 저지른 괴물은 늙거나, 병들거나, 경찰이 아닌 그의 피해자 중 하나인, 방아쇠를 당길 힘이 있었던 조그만 소녀가 죽여서 사라졌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헌터는 그 점에서 시적인 아름다움을 봤다. 아마 부모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 일은 목숨으로 갚아야 할 일이야.” 요아컴이 말했다.
헌트는 뒤로 물러섰다. 요아컴과 일해온 그 오랜 세월 동안 그의 갑옷에 금이 간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요아컴은 냉혹해 보일 정도로 유능한 형사였다. 힘든 상황에서도 농담을 하면서 절대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난 항상 최악을 예상하기 때문에 낙심하는 법이 거의 없어. 자네도 알잖아. 그래서 30년 동안 이런 거지 같은 일을 하면서도 돌아버리지 않을 수 있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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