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 이수명, 문학과지성사, 2011(초판)

 

 

 

 

창문이 비추고 있는 것

 

 

창을 바라본다. 창문이 비추고 있는 것

 

이것이 누군가의 생각이라면 나는 그 생각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누군가의 생각 속에 붙들려 있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의 생각이라면 나는 누군가의 생각을 질료화한다. 나는 그의 생각을 열고 나갈 수가 없다.

 

나는 한순간,

누군가의 꿈을 뚫고 들어선 것이다.

 

나는 그를 멈춘다.

 

커튼이 날아가버린다. 나는 내가 가까워서 놀란다.

나는 그의 생각을 돌려보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생각을 잠그고 있다. 나의 움직임 하나하나로

 

창문이 비추고 있는 것

지금 누군가의 생각이 찢어지고 있다.

 

 

 

 

 

 

 

 

잠의 선율

 

 

웅크리고 잠을 잤다.

잠을 뜯어 먹었다.

잠은 아주 넓은 뿔을 달고 있다.

 

벽을 들고 다니는 곰팡이들이

벽을 잃어버린 것이라고

 

잠은 자꾸 나를 깨웠다.

속삭이는 지평선에 몸에 베였다.

나를 뚫고 나오는 덧니들을 세어보았다.

 

어떤 흉기가 파고들기에

나는 나무처럼 모든 잎사귀를 달고

달리는 것일까

 

잠이 아파서

잠이 지워버리고 찾아나서는 깊은 구덩이가 아파서

 

가라앉으면서 떠오르는 물체들처럼

실현되지 않는 선율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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