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J.D.샐린저, 민음사, 2011(171)

 

 

 

 

 우리 집은 뉴욕에 있었다. 그래서인지 센트럴 파크 남쪽에 있는 연못을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집에 돌아갔을 때, 그 연못이 얼어붙지는 않을지, 얼어버리면 그곳에 살고 있던 오리들은 어디로 가게 되는 것인지가 궁금했다.

 

 

 그가 준비를 마치려면 적어도 다섯 시간은 걸릴 것이었다. 그동안 나는 창문을 열고 장갑도 끼지 않은 맨손으로 눈덩이를 뭉쳤다. 눈은 아주 단단하게 뭉쳐졌다. 그렇지만 달리 던질 데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길 건너편에 서 있던 차를 향해 던지려고 했다. 하지만 곧 마음을 바꿨다. 그 차는 너무 좋고, 깨끗해 보였다. 그래서 난 소화전을 향해 눈 뭉치를 던지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것도 너무 좋고, 깨끗해서 던질 마음이 나지 않았다. 결국 난 아무데도 던지지 않기로 했다. 창문을 닫고 눈 뭉치를 손에 든 채 방안을 이리저리 거닐었다. 눈 뭉치는 점점 더 단단해졌다.

 

 

 난 겨우 열 세 살이었을 때, 차고의 유리를 전부 다 깨부수는 바람에 정신 분석 상담을 받기도 했었다. 그 일로 어른들을 비난할 수는 없었다. 정말 그럴 수는 없었다. 내가 그 애가 죽던 날 밤 차고로 숨어들어, 유리창을 전부 주먹으로 깨부쉈으니까. 그 해 여름에 샀던 스테이션 왜건의 유리창도 전부 깨보려고 했지만, 내 손은 이미 엉망으로 다쳐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그건 정말 어리석은 일이었다는 걸 나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난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난 그녀를 자세히 쳐다보았다. 그렇게 멍청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자기 아들이 얼마나 멍청한지 정도는 알 수 있을 것 같이 생겼다고나 할까. 하지만 어머니들이란 전부 다 조금씩은 제정신이 아니기 마련이다.

 

 

 난 나머지 두 여자들과도 춤을 추었다. 차례대로. 못생긴 래번의 춤은 그럭저럭 봐줄 만했지만, 마티의 춤은 정말 말 그대로 살인적이었다. 마티와 춤을 추는 것은 자유의 여신상이라도 끌고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안녕하세요」 난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워낙 자리가 비좁다 보니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엉덩이에 뭔가 찔리기라도 한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해군 장교와 같이 있었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전혀 반갑지도 않은 사람에게 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같은 인사말을 해야 한다는 건 말이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서 계속 살아가려면, 그런 말들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녀의 옷을 옷걸이에 걸어놓을 때는 괜히 그녀가 서글프게 느껴졌다. 이 옷을 사러 가게에 들어갔을 때는 아무도 그녀가 창녀인 줄 몰랐을 것이다. 옷을 팔았던 점원은 아마 그녀가 평범한 여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사실이 내 기분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왜 그런지는 알 수가 없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난 목사들에 대해서 도저히 참아줄 수가 없다. 내가 다녔던 학교마다 목사들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틀에 박힌 거룩한 목소리를 만들어 설교를 하곤 하는 것이다. 난 그게 싫었다. 왜 좀 더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설교를 하지 않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기 때문에 목사들의 이야기가 순 거짓말처럼 들리는데도 말이다.

 

 

 그렇지만 난 미쳐 있었다. 정말 그랬다. 욕실까지 반 정도 갔을 때, 난 배에 총이라도 맞은 것 같은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모리스놈이 내게 총을 쏜 것이다. 욕실로 가다가, 마음을 진정시키고, 제대로 움직일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도록 버번 같은 거라도 한 모금 마시는 것이다.

 

 

 하지만 마침내 나는 잠이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정말 자살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창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었다. 어쩌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땅에 떨어졌을 때 누군가가 내 몸을 덮어줄 거라는 확신만 있었다면 말이다. 피투성이가 된 내 모습을 바보 같은 구경꾼들에게 보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사탕이나 껌 같은 것을 잔뜩 가지고들 있었기 때문에, 강당 안은 항상 달콤한 냄새가 가득하곤 했다. 그 냄새를 맡으면 밖에는 비가 오지 않는데도, 비가 오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주었으며, 이 세상에서 가장 아늑하고 편안한 곳에 와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아무 데도 가지 못할 거라고 말했어. 내가 대학을 가고 난 후에는 말이야. 내 말 똑똑히 들어봐. 그땐 모든 게 달라질 거야. 우린 여행 가방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겠지. 알고 지내던 사람들한테 전화로 작별 인사를 하고, 호텔에 들어가면 그림 엽서를 보내야 할 거야. 난 회사에 취직해서 돈을 벌고, 택시나 매디슨 가의 버스를 타고 출근하겠지. 신문을 읽거나, 온종일 브리지나 하겠지. 그게 아니면, 극장에 가서 시시하기 짝이 없는 단편 영화나, 예고편, 영화 뉴스 같은 걸 보게 될 거야. 영화 뉴스라. 그게 또 대단한 거지. 언제나 경마를 보여주거나, 어떤 귀부인이 배 위에서 병을 깨뜨리는 모습이라든가, 침팬지가 팬티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모습 같은 것만 보여주니 말이야.

 

 

 예수님이 정말로 좋아할 만한 사람은 오케스트라에서 작은 북을 치는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난 여덟 살 때부터 계속 그 남자를 보아왔다. 부모님과 함께 보러 가는 경우에도, 나와 동생 앨리는 이 사람을 좀더 잘 보려고 앞자리로 옮겨 앉곤 했다. 그는 이 세상에서 최고로 북을 잘 치는 사람이었다. 음악 한 곡에서 북을 칠 일이란 단지 두 번밖에 없었는데, 그 사람은 북을 치지 않고 있을 때도, 지루하다는 표정을 짓는 법이 없었다. 그러다가 북을 치는 순간에는 진지한 표정으로 정말 멋지고, 훌륭하게 북을 두드리는 것이다.

 

 

 정말 취했는지, 바보처럼 내 배에 총알이 박혔다는 생각이 다시 들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총알을 맞은 사람은 나뿐이었다. 재킷 밑으로 손을 집어넣고, 피를 여기저기 흘리지 않기 위해 배를 꾹 움켜잡았다. 내가 부상을 입었다는 걸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다쳤다는 걸 감추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하고 싶은 건 제인의 집에 전화해서 제인이 돌아왔는지를 알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계산을 하고는 바에서 나와 전화 부스로 걸어갔다. 가는 동안 피가 흐르지 않도록 재킷 밑에 손을 넣고 힘을 주고 있었다. 그때는 정말 정신없이 취해 있었다.

 

 

 결국 나는 공원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작은 연못가에 가서 오리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지금도 그곳에 있는지를 알아보러 가기로 한 것이다.

 

 

 「그 애가 죽었다는 건 나도 알고 있어. 내가 그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니? 그래도 좋아는 할 수 있는 거잖아. 죽었다고 좋아하던 것까지 그만둘 수는 없는 거 아니야? 더군다나 우리가 알고 있는 살아 있는 어떤 사람보다도 천 배나 좋은 사람이라면 더욱 말이야.

 

 

 「변호사는 괜찮지만…… 그렇게 썩 끌리는 건 아니야. 그러니까 죄 없는 사람들의 생명을 구해준다거나 하는 일만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변호사가 되면 그럴 수만은 없게 되거든. 일단은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몰려다니면서 골프를 치거나, 브리지를 해야만 해. 좋은 차를 사거나, 마티니를 마시면서 명사인 척하는 그런 짓들을 해야 한다는 거야. 그러다 보면, 정말 사람의 목숨을 구해주고 싶어서 그런 일을 한 건지, 아니면 굉장한 변호사가 되겠다고 그 일을 하는 건지 모르게 된다는 거지. 말하자면, 재판이 끝나고 법정에서 나올 때 신문기자니 뭐니 하는 사람들에게 잔뜩 둘러싸여 환호를 받는 삼류 영화의 주인공처럼 되는 거 말이야. 그렇게 되면 자기가 엉터리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겠니? 그게 문제라는 거지.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알고 싶어? 내가 뭐가 되고 싶은지 말해 줄까? 만약 내가 그놈의 선택이라는 걸 할 수 있다면 말이야」

 

 

 「그건 그렇다치고,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애.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팥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비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같겠지만 말이야.

 

 

 「그래, 이제 너하고 펜시는 하나가 아니란 말이지」

 선생은 항상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곤 한다.

 

 

 「이렇게 쓰고 있어.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이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나는 정말 엉뚱한 짓을 하기 시작했다. 길모퉁이에 다다를 때마다 동생 앨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믿기 시작한 것이다. 「앨리, 날 사라직 하지 말아줘. 앨리. 날 사라지게 만들지 마. 앨리. 제발, 부탁이야. 사라지고 싶지 않아.」 그러고는 내가 사라지지 않고, 무사히 길을 건널 때마다 앨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모퉁이에 다다를 때마다 똑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말을 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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