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한 나는 하늘을 보았다, 구보 미스미, 문학동네, 2011(초판)
나나가 타고 온 자전거를 넘겨받아 밀고 걸어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자니, 이제 막 시작된 여름방학, 자전거를 밀면서 여자애와 둑 위를 걷는 그림이 제법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이 지점을 통과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어떤 책에서 “여자는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난소 속에 이미 난자의 원천이 되는 수백만 개의 원시난포를 갖고 있다”는 글귀를 읽고 충격을 받았다. 바퀴벌레를 때려잡았을 때 뱃속에서 알이 튀어나온 것을 보는 듯한 역겨움을 그때 느꼈다.
언제부턴가 그런 것을 다 잊고 지냈는데, 지금 다시 나나의 배에 가득 찬 작은 알들이 상상되면서 입에서 한숨이 나왔다. 남자도 여자도, 성가신 것을 몸에 끌어안고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왠지 머리가 마비된 것처럼 나른해졌다.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연기를 폐 속에 쌓듯이 하며 천천히 피웠다.
대기실은 무척 조용했지만 자신이나 남편의 DNA를 이 세상에 남기고 싶다는 열의 같은 것이 충만해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와 게이치로 씨에게는 결여되어 있는 그런 정열에 숨이 막히는 것 같아서 클리닉을 나올 때 나는 늘 조금쯤은 발걸음을 서두르게 됩니다.
하루하루 나보다 먼저 조금씩 늙어가는 생명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하는 결혼생활을 계속해 갈 수 있을까. 그리고 나도 게이치로 씨를 쫓아가듯이 늙어갈 텐데. 내 가슴에 아주 작은 구멍이 뚫리고 차가운 바람이 한순간 휙하며 지나간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한여름의 햇볕을 받아 쑥쑥 성장해가는 해바라기 같은 타쿠미 군의 몸도 언젠가는 반드시 말라갈 거야.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늙어가는 인간의 몸에 대해 생각하자, 나는 아이같이 소리 내어 울고 싶어졌습니다.
손가락을 울리는 소리가 사라지는 찰나에 이 창문에서 보이는 풍경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해도,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려고 하는 아기를 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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