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2. 2.
나는 별들도 빛을 내기 위해선 알이 배길 거라고 생각했다
1.
요즘, 어느 때보다 몸이 좋다.
비록 십이지장염에 눈은 더 나빠지고 심폐능력이나 근지구력은 떨어졌을 것이 분명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몸은 근육이 넘실댄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규칙적으로! 운동을 3개월 째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몸의 전면부를 많이 운동하다 보니 등이며 하체가 상대적으로 빈약해 보이기는 하지만
이것도 차츰 보완해 나가면 될 것이므로 별 문제는 없다.
다만, 목이 자꾸만 더 길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몸체와 분리된 것 마냥, 몸체는 건실하니 존재, 하고 목만 조금 다른 물질처럼
따로 노는 것 같은 그런 이미지를 느낀다.
그건 컴퓨터 생활로 인해 목이 모니터를 향해 죽죽 늘어나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시력이 좋지 않아 걸을 때 항상 목을 앞으로 빼고 다녀서 그런 지도 모르고
시야가 좁아서 가만히 눈을 통해 좌우 상하, 시야를 확보하지 못하고
고개를 빙빙 돌려가며 위와 아래, 왼쪽과 오른 쪽에 무슨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파악해서
그런 지도 모른다.
어쩌면, 무언가를 마냥 기다리는 지도 모른다.
이를 테면 어떤 운명 같은 것.
그 운명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어제는 새벽녁 집을 향해 가면서 한강 다리를 건널 때
운명이란 건, 나타나야 운명이고 기다리는 동안은 운명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므로 내가 기다리는 건 운명, 은 아닐 것이다.
다만 나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버릇, 이 들어있다.
어쩌면, 입학식이며 소풍을 항상 할머니와 함께 다니고 저녁이면
엄마가 퇴근하기를 동네 입구에서 기다리던 습관이 여전히 남아서 그런 지도 모른다.
기다리다가, 기다리는 것이 왔을 때의 기쁨,을 유독
모가지가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2.
운동 하는 사람들을 보면, 다양한 스타일과 타입이 있겠지만,
나는 유독 두 가지 타입의 사람들이 눈에 띈다.
하나는 샤프하게 운동하는 타입이다.
결코 지나친 무리는 하지 않고, 꼼꼼하며 전략적으로 몸을 만들어간다.
몸의 결과도 좋고, 여유가 있어 보이며, 도시적이다.
다른 하나는, 안간힘을 쓰는 타입이다.
오늘 내가 5kg 더 무거운 걸 들어올리는 것이 장기적으로 내 몸을 완성해가는데
있어서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좀 더 좀 더, 하고서 안간힘을 쓴다.
운동은 자세가 무척 중요하다고 트레이너들은 입에 써서 붙여놓고 다니는데
이런 안간힘을 쓰다 보면 자세가 흐트러져 운동 효과도 떨어지고
자칫 몸의 체형이 비뚤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이 안간힘을 쓰는 타입을 볼 때 기분이 좋다.
안간힘에는, 샤프함과는 다른,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는 것 같다.
자칫 추하거나 보기 싫게, 후줄근하게, 무식하게 보일 수는 있으나
이 사람이 지금 최선,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지 5kg을 30cm 가량, 단 한 번 더 움직이게 하기 위해, 이를 칵!
물고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는 경험을 해보면
어쩐지 눈물이 난다.
내가 뭐 하는 거지, 하는 생각과 대체 왜, 하는 생각과 함께
가슴팍 위로 슬픔의 중력이 척척 올려진다.
그러고 나서, 또 그런다. 안간힘.
안간힘을 쓰는 건, 그렇게까지 뭐 하러 해? 싶지만
의외로 안간힘을 참는 것도 쉽지가 않다.
Over pace 하지 말라, 하지 말라고 해도, 하고 싶어지는 본능이 존재한다.
낙서 하지마! 방이 더러워지잖아! 라는 잔소리를 들을 걸 알면서도
낙서를 하는 아이가 떠오른다.
안간힘은 일종의, 몰입이다.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렸을 때는 서울(변두리였으나)에서도 잘 보이던 별들이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쩡하게 거기에 별들이 둥둥 존재한다는 걸 나는 알고 있는 것이다.
왠지 모르게 화가 난 나는 별을 향해서 소리쳤다.
안간힘이라도 좀 써봐! 하늘이 더러워서 안 보이는 거 누가 몰라?
세상이 원래 더러운 거 아냐? 그래도 좀 빛을 보여봐!
그리고 나서 눈이 뽑힐 것처럼 쏘아보고 있으면 아주 간신히
바르르- 떨리는 별 하나를 발견 하고는 했다.
나는 별들도 빛을 내기 위해선 알이 배길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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