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청춘 2010 겨울
문장
박후기
성기로 아버지를 대필한다 의뢰인의 요구를 아주 무시할 수는 없으므로, 나는 얼굴이나 발가락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써 놓고 보니 닮은 것 같긴 하지만, 지우고 다시 쓰고 싶은 마음 때문에 불혹이 불편하다
처음엔
어떻게 하면 아버지 문장을 닮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지금은
어떻게 하면 아버지 흔적을 지워버릴 수 있을까 고민한다
제발 대필자의 마음을 헤아려 달라고,
산 갈피에 아버지를 묻으며 생각한다
감기
숙주를 파고드는 병과
함께 누워
약을 먹는 밤은
쓰다
목에 걸린 알약처럼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육신아
물 한 모금 겨우
눈물 한 모금 겨우 삼키며
너를 안고
너를 앓는다
누가
내 안에 들어와
기어이
사흘 밤낮을
울고 간다
마실
오탁번
동백꽃처럼 동백꽃처럼
질 때도 꽃 모양 그냥 지닌 채
숨 거둘 수 없을까
너부데데한 모습 보이지 않고
마실갔다 돌아오는 것처럼
한 세상 끝낼 수 없을까
이웃에 마실 가서 친 화투판에서
돈 몇 푼 날리기는 했지만
동치미에 국수 말아 밤참을 먹고
막걸리도 몇 잔 했으니
다 본전은 한 것 아니냐고
혼자 생각하면서
사뿐사뿐 돌아올 때처럼
동백
민병도
손닿으면
데이고 말
저토록
뜨거운 불을
가슴에 지니고도
내색 한번
않더니
봄 실은
뱃고동소리에
붉은 목을
꺾다니
홍시
김진길
재 너머 고모님 댁엔
감나무가 대여섯
해마다 등불 내걸으시다
감꽃 지듯 가시던 날
퍼억 퍽,
알전구 터지고
주렁주렁 까치 열렸네.
분홍분홍 뭉게구름
백우선
금낭화꽃 아이가 탄
금낭화꽃 유모차를
금낭화꽃 엄마가 밀고 가네.
비탈길 오르막을
분홍분홍 밀고 가네.
아이는 몸을 돌려
엄마랑 마주보며
분홍분홍 종알대네.
말 분홍
웃음 분홍
오르막을 솟아올라
붕홍분홍 뭉게구름
둥실둥실 떠오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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