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백 무협 단편집, 좌백, 새파란상상, 2012(초판1)

 

 

 

 

 

 

<협객행>

 

죽을 놈과 죽일 놈은 다르다. 그걸 구분하지 못하면 협객이 아니라 살인마일 뿐이지.”

 

이 마을의 관병들은 세금 걷을 때만 보여.”

사내는 짧게 대답하고 다시 술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한밤중 서리 앉은 길을 사내는 달리고 있었다. 머리 위로는 흐르는 구름 사이로 조각달이 따라 달렸고, 사내의 한참 뒤에는 청년이 발소리를 죽이며 몰래 뒤를 따랐다. 차가운 달빛 아래 얼어붙은 정적은 앞뒤로 이어진 두 사람의 발길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떠도는 건 같더라도 이왕이면 바람처럼이라는 쪽이 좋겠습니다. 대형.”

 

바람이라. 그래 바람일 수도 있지. 비도 아니고 눈도 아니고. 곡식의 생장이나 사람들의 생활에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그런 존재가 우리니 바람이라고 해도 되겠다. 그냥 우리가 한번 쓸고 가면 남은 사람들은 다시 고개를 들고 무슨 일이 있었나 하며 사는 거지. 그게 그들과 우리의 차이였던 것이지.”

 

 

 

 

 

<마음을 베는 칼>

 

 사내는 충분히 날카로운 칼을 주면 마음을 베어 보이겠다고 말하곤 했다.

 

 마음을 베는 칼이 뭔지 사내는 이미 알고 있었다. 거기에 베여서 가문을 떠나온 것이니까. 그가 깊이 사랑하던 그녀가 그가 아니라 그의 형, 장래 남궁세가의 가주가 될 자격을 획득한 형의 품에 안겼을 때, 그리고 그 이유가 사랑이 아니라 세가의 안주인이라는 자리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사랑이라는, 그리고 실연이라는 칼날에 마음을 베였다. 누가 말했듯이 몸을 베는 칼은 같은 상처를 두 번 다시 만들 수 없지만, 마음을 베는 칼은 항상 똑같은 자리에 똑같은 깊이와 고통의 상처를 만들기 때문에 저항할 수도, 치유될 수도 없는 깊은 상처를 남긴다. 아무리 긴 시간이 흘러도 그 상처는 치유되지 않으므로, 또 그 칼은 한 번 베는 것으로 수없이 다시 베기 때문에 무적의 칼인 것이다.

 

 형수가 된 옛 연인을 만나 과거의 상처를 다시 들여다보는 일도 생각보다 괴롭진 않았다. 둘도 없는 친구를 죽이는 일도 그렇게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호랑이들의 밤>

 

 일본의 기술 전수법은 원래 가르쳐 주지 않는다. 알아서 훔쳐라.’. 요즘은 안 그런다지만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공방들은 다 그래요.”

 

 니체의 철학 중에 르상티망(ressentiment)이라는 개념이 있더군요. 우리말로는 복수’, ‘원한’, ‘질투정도로 해석되는 프랑스말인데, 짧게 말하자면 도덕은 강자에게 가하는 약자의 복수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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