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자동차, 신동헌, 세미콜론, 2012(13)

 

 

 

 자동차라는 게 고성능의 비싼 차만 존경받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나라 차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실용차를 만들면서도 뜬금없이 럭셔리’, ‘하이클래스’, ‘프리미엄노래를 부르는 바람에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

 

 

 

 당신이 만약 자동차를 가지고 있다면 장담하건대 검은색이거나 흰색이거나 은색일 것이다. 놀랍게도 우리나라에서는 당신과 같은 선택을  한 사람이 90퍼센트나 된다.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이 아닌, 어떤 이유를 가진 디자인은 보면 볼수록 매력이 풍겨 나온다. “더 빠르고 더 높이 날아서 적진에 더 정확하게 미사일을 쏜다.”는 명확하고 잔인한 이유를 갖고 태어난 전투기가 결과적으로 아름다운 형태를 띠는 것과도 같다.

 

 

 

 잘 생각해 보라. 우리는 노면을 좀 더 움켜쥐기 위해 좌우로 벌어진 포르쉐의 엉덩이에 열광하며, 좀 더 민첩하게 방향을 바꾸기 위해 짧아진 BMW의 오버행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킨다. 그러나 난초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이리저리 그었다는 쏘나타의 라인을 보며 전율을 느끼지는 않는다. 멋진 디자인이란, 어떤 이유를 포함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자동차 회사는 칭찬이든 지적이든 외부의 소리를 듣고, 개선해 나가는 것이 정상이다. 미디어란 그런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비평가라는 직업을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비평에 익숙하지 못하고, 그 비평을 비평하는 것에도 익숙하지 못하다. 영화 평론가에게 그럼 너는 그런 영화 만들 수 있냐?”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그건 영화감독과 비평가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아둔한 것이다.

 

 

 

 우리나라 자동차에는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철학만 없는 게 아니라 꿈도 없다. 어린아이들이 국산차 포스터를 방에다 붙여 놓는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애초에 미래의 소비자들이 꿈을 키울 수 있도록 포스터를 만들어 뿌려야겠다는 생각도 안 해 봤을 것이다.

 

 

 

 우리나라 자동차 회사는 과연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국산 차를 사랑하는 것만큼 국내 소비자들을 사랑하고 있을까? 지구상의 그 누구보다도 큰 애정을 갖고 지켜보고 있는, 그리고 가장 큰 수익을 올리게 해 주고 있는 우리나라 소비자를 애정 어린 눈으로 보고 있는 걸까? 정답은 아니오.”. 이건 내 생각이 아니고 사실이다. 심지어 자동차 회사 스스로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부드러운 나파 가죽으로 된 시트는 언제나 부드러운 슈트를 입는 사람이라면 권할만하지만, 리벳 장식이 달린 청바지를 자주 입는다면 권할 만하지 않다. 타고 내리는 부분의 시트는 얼마 안 가 찌그러지고 더러워질 것이다. 1~2년쯤 지난 국산 고급 차와 일본 차의 가죽 시트를 보면 한 눈에 알 수 있다. 독일 차들이 최고급 모델에만 나파 가죽을 쓰는 건 원가 절감을 위해서가 아니라 고객층의 라이프 스타일을 연구한 결과다.

 

 

 

 아우디는 냄새 연구소조직을 별도로 운영하기까지 한다. 새 차에서 날 수 있는 유쾌하지 않은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서다. 이 연구팀은 연중 쉬지 않고 소재를 테스트하는데, 신차뿐 아니라 실제 사용 조건 하에서 몇 년이 지난 차의 냄새도 연구한다.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면서 공기와 직사광선에 노출되면 다른 냄새를 풍기게 되는 소재도 있기 때문이다. 수입 신차에서 역겨운 냄새가 나지 않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에너지 소비를 줄여주는 에코 프로 모드까지 더해졌다. 이 버튼을 누르면 연료 소모가 20 퍼센트나 줄어든다. 계기판에는 에코 프로 모드를 선택한 이후 늘어난 주행 가능 거리가 표시된다. 이건 국산 차에서 볼 수 있는, 액셀러레이터를 아무리 밟아도 차가 안 나가도록 만들어서 연비를 좋게 하는 어이없는 에너지 절약 시스템이 아니다. 그 버튼을 눌러도 차는 어디까지나 BMW답게 움직인다.

 

 

 

 컨버터블을 구입한다는 건, 누구나 그렇게 되기 싫어하는 어른이 아직 되지 않았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혹은 어른이 되긴 했는데 어린 시절의 마음을 잊지 않았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다. 주차할 곳이 없어서, 컨버터블 지붕을 찢어 놓는 애들도 있다던데, 보험금이 비싸서, 지붕을 열 만한 곳이 없어서 등등의 이유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사람들은 논리적인 게 아니라 그냥 어른이라서 그런 것이다.

 

 

 

 페라리란 어차피 열심히 돈 벌어서 사는 차가 아니다. 유럽의 유서 깊은 귀족 집안 사람들이 주 고객이고, 사인 한 번에 엄청난 액수의 돈이 오가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가까이 가기 힘든 차다.

 

 

 

 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내 오른발이다. 항공기용 알루미늄을 깎아 만든 액셀러레이터를 내 오른발로 밟으면, 이 차는 공간을 일그러뜨릴 듯한 가속력을 보여 줄 것이 분명했다.

 

 

 

그중에서도 포르쉐는 정신과 의사들이 작당해서 만든 차라고 할 수 있다. 포르쉐는 어떻게 하면 남자라는 동물의 뇌 속에서 아드레날린이 치솟게 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들의 처방 하나하나에 전 세계의 백만장자들이 흥분의 도가니로 빠지곤 한다.

 

 

 

 카이엔의V6버전은 가장 저렴한 포르쉐로서 저변 확대에 힘썼고, 터보 모델은 SUV도 포르쉐가 만들면 다르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라면 포르쉐가 아니다. 이미 말하지 않았나. 포르쉐는 사람을 미치게 만들 줄 안다고. 포르쉐는 카이엔 터보에 만족하고 있던 고객들의 뒤통수를 세게 한 대 내리쳤다. 405마력짜리 자연 흡기V8엔진을 장착한 카이엔 GTS가 새로 등장한 것이다. 포르쉐의 ‘P’자도 모르는 주제에 폼만 잡는 사람이라면 카이엔 터보는 520마력이나 되는데…….” 하며 빈정댈지도 모른다. 그러나 포르쉐에 걸맞는 운전 실력까지 갖춘 사람이라면 ‘GTS’라는 엠블럼이 무너가 석연치 않다고 느낄 것이다. 그렇다. 이 차는 엔진의 힘이 아니라 차체의 날렵함과 밸런스로 속도를 내는, ‘운전의 재미를 위한 차인 것이다.

 

 자연 흡기 엔진을 장착한 911 GT3911 터보를 코너에서 제압하듯, 이 차는 직선에서 앞서 나간 카이엔 터보를 코너에서 앞지를 수 있다. 포르쉐의 홍보 담당자 마이클 바우만(Michael Baumann)은 카이엔 터보가 있는데 왜GTS가 또 나왔냐는 질문에 우리가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는지 알려 주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이 거대한 포르쉐는 시내를 거들먹거리며 천천히 크루징하는 것은 물론이고 고속도로에서 법정 속도의 세 배 가까운 속도로 내달리거나 와인딩을 춤추듯 공략하는 것도 어울린다.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벤틀리의 목공예 장인이 무늬가 마음에 안 든다며 멀쩡한 원목을 통째로 버리는 모습도 행여나 상처를 입을까봐 울타리도 치지 않은 넓은 벌판에서 방목한 소의 가죽만 사용하는 것도 미친 짓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볼보 아이스 드리이빙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행사는 볼보가 매년 여는 행사로, 자동차 담당 기자들 사이에서 꽤 평판이 좋았다….

 이 행사의 취지는 추운 나라에서 개발된 차인 만큼 겨울철에 잘 달린다는 것을 어필하고, 볼보가 자랑하는 생명을 구하는 차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개들은 주인이 멈추라고 하기 전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사람 네 명을 태우고 옆의 눈을 씹어 가며 달리는 모습에 일종의 장엄함마저 느껴졌다.

 

 

 

 나는 일정을 마치고 나서야 스웨덴 사람들의 안전 의식에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우리에게 순록 고기를 먹이고, 실내 온도 영하 5도의 오두막에서 잠을 재우고, 눈밭에서 목욕하게 하고, 스노모빌과 개썰매까지 섭렵하게 한 후에야 빙판 길 위에서 운전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 ‘사고가 났을 때 다치지 않는 차를 지향하는 점이 볼보의 수동형 안정(passive safety) 철학을 의미한다면 이처럼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겨울 나라의 환경에 완전히 익숙해진 후 자동차 운전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건 능동형 안정(active safety) 철학이었다.

 

 

 

 일본의 국민 그룹이라 할 수 있는 사잔 올 스타즈(Southern All Stars)의 리드 보컬 구와타 케이스케는 이렇게 노래했다. “인간은 왜 추억을 버리기 위해 여행을 떠날까?”

 

 

 

 미끄러지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면 오프로드를 달릴 수 없다. 미끄러지는 게 당연한 길 위에서, 미끄러뜨리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우는 게 이 여행의 목적.

 

 

 

 르망 24시간 내구 레이스.

 킹 오브 쿨(king of cool)’로 불리던 스티브 매퀸이 사랑했던 이 레이스는 레이스계의 킹 오브 쿨로 불릴 만하다. 스물 네 시간 동안 쉴 새 없이 달려 가장 많은 바퀴 수를 달린 경주차가 우승을 차지한다는 간단명료한 룰.

 

 

 

 이 세상에서 가장 귀족적이고 가장 제멋대로인 F1은 여론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겠다고 결정하면 진행하는 것이고, 경기가 진행된다는 건 모든 부분에서의 퀄리티를 F1에서 인정한다는 의미다.

 

 

 

 좀 더 작게 느껴진다는 건 잘 만들어진 차의 특징이기도 한데, 주로 독일 차가 그렇고, 일본 차들 중에서는 렉서스나 인피니티에서 그렇게 느껴지는 차들이 많다. 5미터가 넘는 차 중에서도 스티어링 휠을 꺾고 주차장에 들어가는 동작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경우도 있으니 결국 설계 시 차체와 조향 기구를 얼마나 제대로 설계했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바이크는 운전자가 없다면 똑바로 일어설 수조차 없다. 모든 걸 라이더가 알아서 해 줘야 한다. 라이더는 바이크의 서스펜션이자 ECU이자 TCS이다.

l  ECU는 자동차의 엔진, 변속기, ABS등의 상태를 컴퓨터로 제어하는 전자 제어 장치(Electronic Control Unit)이다. TCS는 트랙션 컨트롤 시스템(Traction Control System)의 약자로, 미끄러지기 쉬운 노면에서 차량으 ㄹ출발하거나 가속할 때 과도한 구동력이 발생하여 타이어가 공회전하지 않도록 차량의 구동력을 제어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남자에게 차를 고르는 권한이 있다면, 아마도 더 많은 쿠페와 더 많은 왜건이, 그리고 더 많은 원색 자동차들이 있을 것이다. 국산 컨버터블도 한 두 종류쯤 태어났을지도 모른다.

 여자들은 다년간에 걸친 쇼핑 경험이 있기 때문에 원색이나 눈에 띄는 특이한 디자인도 쉽게 질린다는 것을, 남들과 다른 걸 구입하면 결국 나중에 후회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녀들은 자동차를 구두나 백을 구입하는 것과 같은 프로세스로 이해하고 구매한다. 남자가 뭔가 모험을 해 보려고 해도, 여자가 혀를 끌끌 차며 철이 덜 들었다는 듯이 눈을 한 번 흘기고 나면 본능적으로 움츠러들고 만다.

 

 남자들은 어려서부터 뭔가를 구입할 때 꽂혀서산다. 파워레인저 로봇을 사는 사내아이들이 변형 메커니즘의 정교함이나 오래 갖고 놀 수 있는 견고함을 볼 리가 없는 것처럼, 카메라를 고르는 사내들도 렌즈의 초점 성능이나 보디의 조작 편의성보다는 사나이는 니콘”, “나는 캐논 슈터같은 감성적 문구에 혹해서 지갑을 열곤 한다. 뭔가를 구입할 때 남자의 머릿속에서는 위이이이잉하는 컴퓨터 연산이 작동하는 게 아니라 아아아아아아앙하는 맹목적인 사랑의 화학 작용이 일어날 뿐이다.

 

 

 

 엄마 친구 아들은 월급쟁이이긴 한데 연봉이 1억이 훨씬 넘어서 독일제 수입 차를 멋지게 굴리고 부모님 차도 새로 장만해 드린다지만, 엄마 친아들인 우리는 국산 중형차 한 대 타기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래, 페라리는 돈 많은 집 자식이 타야 옳은 차다. 자기가 번 돈이 아니라 선대가 번 돈으로 사는 차. 성공한 남자보다는 성공한 집안 출신의 남자가 타는 차다. 자동차 마니아라면 가격을 보고 그 정도는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포르쉐는 페라리보다 못해서 그보다 싼 게 아니라, 자기가 번 돈으로 자동차를 사는 사람은 절대 그 이상의 가격을 자동차에 투자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둘 다 최고의 자동차이지만, 그 차이는 꽤 크다.

 

 

 

 하지만 포르쉐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 차는 부자들의 장난감이라기보다는 열정을 잃지 않는 남자의 장난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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