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의 전설, 데이비드 밴, 북이십일 아르테, 2014(1판1쇄)
아버지의 배가 파도 하나를 넘어 또 다른 파도 속으로 곤두박질칠 때마다 난 그날의 전리품인 핼리벗(Halibut, 대형 넙치)과 함께 펄쩍펄쩍 공중으로 튀어 올라야 했다. 핼리벗들은 하얀 갑판 위에 녹회색 개처럼 널브러져서는 커다란 갈색 눈으로 애절하게 나를 올려다보았고, 난 놈들을 망치로 모조리 때려 죽였다.
어머니와 나는 살아남았다. 높이 올라간 적이 없기에 떨어질 곳도 없었다.
언젠가 호숫가 숲 속에 서 있는데 갑자기 수백 개의 알갱이가 주변 잎사귀들을 비처럼 때리기 시작했다. 어찌나 부드러운지 혀로도 하나 잡을 것만 같았다.
존과의 작별이 시작됐으나 그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 자리에 서서 어설픈 미소만 지었다. 어머니가 우는지 웃는지는 판단이 서지 않았지만 어쨌든 존은 그 자리를 떠났다. 얼핏 소멸해가는 것처럼 보였다.
가늠자 저편에서 가로등이 청백의 빛을 토하며 터질 때만큼 아름다운 광경을 본 적이 없다. 게다가 그 소리! 파편이 대기를 날며 안개처럼 반짝인 다음에야 가로등은 퍽 하고 포효를 내뱉었다. 그리고 완전한 정적 속에 좌르르 유리 비를 쏟아냈다.
그 이후로 모두 달라졌다. 로이의 생각도 크게 바뀌었는데, 실제로 열두 살과 열세 살 사이에 천지개벽이라도 있는 듯싶었다. 열두 살 때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뇌는 어떻게 돌아갔지? 아무리 고민해도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당연히 그 나이 때엔 자기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생각해보지 않는다. 그래서 당시 사건은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도 함께 웃어주었다. 슬픔을 견디는 무기는 오로지 어리석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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