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자들, 김언수, 문학동네, 2017(1판 11쇄)
“불이 아름답군요.” 래생이 말했다.
“알고 보면 재가 더 아름답지.”
“책을 읽으면 부끄럽고 두려운 삶을 살 것이다. 그래도 책을 읽을 생각이냐?”
문득 늙은 개 산타와 시골에 살던 노인이 생각났다. 그도 권력에서 물러날 때 누군가가 다가와 말했을 것이다. 어디 조용한 시골 같은 데서 여생 편히 사시라고. 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냐고. 인생에서 남은 시간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꽃을 키우고, 감자를 키우고, 개를 키우고, 죽은 뒤 자신이 누울 묏자리를 살펴보는 것. 오후의 좋은 햇살 아래서 병들고 늙은 코끼리처럼 눈을 깜박거리며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조차 삶의 진짜 동기를 숨기고 산다고 하더군. 그래서 자기를 속이기 위해 끊임없이 가짜 동기를 만들어내야 하는 거지. 너는 너의 진짜 동기가 뭔지 모르지? 솔직히 지금 너도 네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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