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날은 인생이다, 강신재, 책읽는수요일, 2011(초판 1쇄)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곳은 마감된 과거가 아니었다. 재봉틀 앞에 앉은 그는 느린 맥박 같은 움직임으로 시간을 잇고 있었다.




 “옛날에 일 배울 때 너 구두일 오래 하면 꼽사 된다 꼽사 된다 그캤는데 진짜……. 요 앞에 왔다 갔다 할 때 이래 구부리고 걸으면 괘안은데 남 보기 남사시러서 억지로 펴가이고 댕기요. 

그래서 역전까지는 못 걸어간다니께. 한 번 쉬어야지. 팔십 먹은 반송장이지 뭐.”

 삶을 몸에 가둔 양 옹이 다시 재봉틀 앞에 앉는다. 답이 점점 짧아지는 걸 보니 마음이 이미 구두로 옮겨간 모양이다.




 그는 주변에서 만류하는데도 특수학교 대신 일반 학교를 택했다. “부족한 사람일수록 나쁜 것부터 받아들이거든요. 현명한 사람은 나쁜 걸 잘 안 받아들여. 나쁘니까.

특수 학교를 여럿 답사해봤지만 어디서도 배울 게 없었어요. 거기선 공부를 시키는 게 목적이 아니니까. 하지만 부족한 아이라도 세상이 어떻다는 것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지.”




 “부처님한테 절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마음이 알아서 닦아지는 건 아닌 거 같아. 일할 때건 생활할 때건 원망과 불만을 놓고 사는 공부가 따라야지. 안 된다고 남을 탓할 필요는 없어.

다 자기가 지어온 것이지 ‘누구 때문’이라는 건 없어.”




 즉사한 이의 골을 주워 먹고 떠나는 강아지를 보고도,

 목을 매고 죽은 이가 현장에 남긴 똥을 보고도,

 부패한 시체에 날아온 똥파리 때에 안면이 포위돼도

 그들은 진창의 얼굴을 내보이면 안 된다.

 죽음을 숭고하게 받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진창의 비린내를 가슴 한 구석에 가두고

 경건한 마지막을 위해 마음을 단련한다.

 그리하여

 결국 생에서 귀도 천도 지우고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

 바로 장의사다.




 물기를 감당하지 못한 공기가 오가는 몸뚱이에 사정없이 들러붙는 아침, 우리의 이야기는 묘하게도 굳어가는 시신 언저리에서 시작됐다.

 진달래 장의사 대표인 김덕량 씨는 담담하게 말을 잇는다. “의사가 숨이 떨어졌다고 판정한 시체는 영구차에만 실을 수 있어. 아무 차에나 실었다간 벌금 내고 폐차되고 말아.

119도 안돼. 129라고 김대중이가 지방에 먹고살라고 만들어놓은 구급차가 있는데, 그 차에나 실을까.”




 세상의 온갖 죽음을 마주한 그의 사연이 생생하다. “큰 차에 눌려 골이 깨지면 그 소리가 얼마나 큰 줄 알아? 천지가 울리면서 꽝 한다구. 꿀렁꿀렁 흘러나오는 골은 또 어떤데.

순두부랑 똑같애. 그걸 개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 (사고 현장에) 지나가던 개가 있으면 (골을) 얼릉 주워 먹고 간다니까.”




 “차에 갈려 죽은 송장은 그나마 깨끗하지. 기차에 깔리면 30미터는 날아가.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그런데 사람들이 날 훤할 때 기차에 받치겠냐고? 캄캄한 밤에

술 처먹고 가다가 당하는 게 다반사야. 그 어두운데 후라시 들고 가서는 사지를 전부 찾아와야 돼.”




 “목매달아 죽은 현장엘 가보면 하나같이 똥을 싸놨어. 항문이 열려서 그런지 뭔지. 다들 영화를 보구 죽는지 신발은 꼭 벗어놔.

그 위에 소지품 가지런히 올려놓구. 왜긴 왜야. 그렇게 안 하면 천당이나 지옥에서 안 받아주니 그러겠지.”




 “잘 된 이발? 한 달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머리지.”

 47년 경력의 이발사 이남열 씨의 대답은 간단했다….

 “길어서 깎는 머리가 이발이지, 모양이 변형돼서 깎는 건 이발이 아니야.”




 “가위 숫돌에 대강 슥슥 하고 면도 숫돌에 갈아 날을 세웠어. 그래서 내 가윗날은 면도날이야. 움직이기만 하면 머리카락이 알아서 잘려 나가. 가위 무게만 가지고 자르는 거지.

힘줘서 자르는 게 아니라.”




 “여기 반작반짝한 고운 날 있지. 칼 갈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 날 자체를 없애버리고 갈아. 근데 이게 없어지면 머리카락이 잘리면서 옆으로 튀어. 잘 갈아서 자르면 머리카락이 아래로 곱게 떨어지고. 

그게 정상이지.”




 “날이 아주 잘 선 칼은 수염이 나갈 때 경쾌하게 꽝꽝 울리지. 날이 안 드는 건 나가는 감부터 다른 데다 울리는 소리도 아주 둔탁해. 근데 이 칼은 이상하게도 소리가 안 나.”




 “당뇨병 환자 면도하는 게 제일 어려워. 수염 잡고 있는 근육이 약해서 털이 안 깎이고 그냥 뽑힐 때가 많거든. 기가 막히게 잘 나가는 칼을 쓸수밖에 없지. 안 그럼 피가 막 나니까.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 말도 못해”




 “다 정치적인 교화 사업 때문이야. 교도소에서 전과자한테 이발 가르치고, 창녀들 데려다 면도 가르치면서 80년대 퇴폐업이 시작됐다구. 그런 토양을 견딜 수 없어서

지각 있는 이발사들이 업계를 많이 떠났지.”




 “인생에 정답이 있어? 없지. 살다가 중풍 맞으면 비참하게 살다 가는 거고, 뇌출혈 맞으면 정신없이 살다 가는 거고, 정답 없으니까 열심히 살다 가야지. 하루의 고뇌에 만족하면 돼.”




 “쇠를 진흙에 10년씩 묻어놓으면 강한 것만 남고 무른 건 다 빠져나가. 꺼내보면 구멍이 숭숭 뚫려 있지. 그걸 불에 녹여 때리는 거야. 그렇게 만든 칼은 1200만 원씩 받아. 

근데 땅보다 더 좋은 게 바다야. 큰 쇠를 가져다 바다에 30년씩 넣어놨다가 꺼내봐. 불순물 다 빠져나가고 진짜 쇠만 남는 거야. 나무를 (바다에) 넣어도 마찬가지고.”




 녹슨 칼을 가는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냉정한 칼은 자장면도 반 그릇밖에 못 먹는 여든둘의 힘을 그렇게 시험한다.




 “가위가 칼보다 훨씬 힘들어. 가위는 이쪽 안쪽 면만 갈아야 돼. 양면 다 갈면 버려. 이 끝 갈아서 날지고 저 끝 갈아서 날지게. 이 끝하고 저 끝이 마찰이 돼서 베어지는 거거든.

안 갈 데를 갈아버리면 그 가위는 못 써.”




  “가위한테는 거짓말 못해. 조금만 이상이 있어도 안 비어져. 갈아가지고 천을 자르면 똑 떨어져야지. 천을 물고 늘어지면 안 되거든.

잘 갈아도 바닥에 떨어트리면 큰일 나지. 요 날이 이상해져뿌려.”




 “우표엔 액면이 있잖아? 20원이라 적힌 건 1973년에서 1975년에 나온 우표야. 70원짜리 이놈은 1978년에서 1979년에 나온 거고. 옛날 우표지만 액면은 항상 살아 있어.

옛날 우표라고 해도 그 가격 그대로 언제나 사용할 수 있잖아. 요새 일반우편 요금이 250원이니까 편지지 겉봉에 20원짜리 13장을 붙여 발송해도 제대로 간다는 거지.”




 “돈이 없은께 맨날 하는 거여. 댜른 게 할 게 뭐 있간? 젊을 적엔 많이 벌었는디 다 썼어. 맨날 젊은 줄 알고 다 썼어. 돈 벌어 애들이나 많이 가르쳤으면 됏을 텐데, 

애들은 중 고등학교까지 밖에 못 갈쳤어. 안 그랬음 지들이 이렇게 어렵게 벌어먹고 안 살 낀데……”

 김씨가 그 말을 받는다. “벌긴 벌었는데 다 어디로 갔나. 다 손끝에 붙은 밥풀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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