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일이다.

아침 출근길 강남역을 빠져나오며

드디어 크리스마스가 끝났다는 것에 대해 안도감을 느꼈다.


그럴 때가 있다.

모두가 기다리고, 모두가 행복해져야 할 것만 같은 날이 

지나가서 오는 안도감을 느낄 때가.


예를 들면 '여자친구의 생일', '어버이의 날' '아이가 있는 부모의 어린이날'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이후 이혼율이 급증한다고 한다.

어떻게든 이때 행복해져야 한다는 압박감이 스트레스가 되고

부부 싸움과 음주로 이어지고 그렇게 이혼까지 가게 된다고.


영수증을 정리하다 보니

지난 주말과 이어진 크리스마스 이브와 크리스마스 때 내가

얼마나 분주하게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돈을 쓰고

무언가를 먹거나 어딘가로 가기 위해 애썼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크리스마스가 되면 혹시라도 내가 저 행복한 사람들 중에 하나가 되지 못할까 봐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크리스마스라서 행복한 게 아니라,

크리스마스라서 꼭 행복해져야 되니까 그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여러 개의 모임 중 가장 좋은 모임이 무엇일까 추측하고

혹은 몇 개의 만남을 스케줄로 엮고

예약을 하고 데이트를 하고

더 좋은 장소와 더 좋은 이벤트는 없을까 생각해본다.

엄연히 크리스마스에도 경쟁은 존재한다.

남들보다 더 행복해지고 싶어서, 혹은

적어도 남들만큼은 행복해 보이려고, 사람들 많은 곳을 향해 

보다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는 곳을 향해 꾸역꾸역 몰려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기대했던 것보다는 못했던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생각보다는 분위기가 나지 않았던 크리스마스'였다고 이야기한다.


이상한 피로와 결핍감,

그리고 어쨌거나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감을 느낀다.






'불나면들고나갈것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40. 퇴근길  (0) 2017.11.28
39. 원시 현대의 연말  (0) 2017.11.28
37. 진짜 사랑과 가짜 사랑에 대해  (0) 2017.11.28
36. 불행은 간단하다  (0) 2017.11.28
35. 한국 백화점엔 없는 것  (0) 2017.11.28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