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다.
좋으나 싫으나 사람으로서 도리를 다하기 위해서는
이곳 저곳 술자리에 끼어들 수밖에 없고
빠져 나오기 위해 눈치를 보거나
빠져 나가는 친구를 비난하거나
택시를 잡기 위해 도로 위에서 발을 구르거나
아무튼 작년 이 맘 때와 나아진 게 없는 서로의 모습을(외면으로나 내면적으로나)
스스로와 주변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알려주기 위한 일들이 벌어진다.
한국에서의 술자리를 보면 다분히 통과의례적인 모습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술 마신 다음날 출근을 하면 선배 격의 사람이 흐뭇한 표정으로
“어제 많이 마셨지? 몸은 괜찮아?”라며 다정하게 물어본다.
이 말 속에, ‘몸이 아플 정도로 마시지 않으면 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이
반영되어 있지 않음을 알 수가 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마시고 싶은 만큼 알아서 적당히 마시는 술 문화에서는
서로의 몸에 대해 다음날 아침 염려해주는 이런 식의 풍경은 쉽게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그 말을 건넬 때의 흐뭇한 미소 속에는
“자식, 너도 그렇게 선배가 되고 사회인이 되어가는 거야”라는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인정해주는 그런 식의 사고가 내포되어 있다.
이런 대화를 나누는 아침의 전날 밤으로 되돌아가본다면
안 봐도 단체로 술을 돌리고, 단체로 동시에 잔을 비우고 하는 모습을 쉽게 떠올릴 수가 있다.
그리고 이 모습은 다분히 원시적인 제례의식과 닮아 있다.
모두가 신성한 곳에 신성한 모습으로 모여 신성한 하나의 목적 아래 동일한 행동을 하는 것.
그리고 이런 술자리 의식을 함께 해야만 한 명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준다는
암묵적인 시스템.
대학 신입생 환영회 때부터, 사회로 진출하고, 다시
직장을 옮길 때마다 이런 일들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통과의식은 한국의 술 문화에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뚜렷한 의식이다.
그리고 이런 의식은 반만년의 역사와 단일민족 말고는 자랑할 게 없었던 민족답게
역시나 매우 오래전, 원시 때부터 있어온 의식이고
아프리카나 오지의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일이며
다큐멘터리 채널 등을 통해서 확인할 수도 있는 미개인들의 문화인데
신기하게도 현대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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