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 셔윈 B. 눌랜드, 세종서적, 2017(초판 3쇄)
시인, 수필가, 역사가, 소설가, 현인 등은 죽음에 대해 글을 자주쓰지만 그들이 죽음을 직접 목격한 경험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죽음을 수없이 보며 사는 의사들이나 간호사들은 죽음에 관해 거의
글을 남기지 않는다.
결국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게 의자 등받이에 필을 묶어둬야 했다. 그런 상태에서도 필은 다리를 쉴 새 없이 움직였다. 허리가 의자에 끈으로 묶여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그는 빠르게 다리를 움직였다. 산보할 때와 같은
동작이었다. 그것은 잃어버린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행동일 수도 있었고, 내면에서 뭔가가 알츠하이머 질환이 마지막 국면에 다다른 것을 알아차리고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려는 반사작용이었는지도 모른다.
알츠하이머 환자를 둔 가족들은 몇 년씩이나 삼면이 포위된 막다른 길목에 들어가 태양이 찬란히 빛나는 대로를 옆에 둔 채, 컴컴한 미로를 헤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단 한 가지 탈출구가 있다면,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주는 길뿐이다.
그런 실례로 퍼시 브리지먼의 자살을 들고자 한다. 하버드 대학교 교수였는 그는 고압물리학(high-pressure physics)으로 1946년 노벨상을 받은 물리학자였다. 말기 증세에 이른 암으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그는
79세의 나이로 쓰러질 때까지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1961년 8월 20일, 당시 의학계에서 도덕적 문제로 논쟁의 대상이었던 쟁점들을 정리하는 유서를 남긴 채 그는 권총으로 자살했다. “이렇게 자신의 생명을 직접
거두도록 만드는 사회는 온당하다고 할 수 없다. 나 자신에게 이렇게 할 수 있는 힘도 오늘이 지나면 남아 있을 것 같지 않다.”
브리지먼은 자신의 선택이 옳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죽어갔다. 마지막 날까지 명확하게 살며 계획을 이행한 사람이었다... 브리지먼은 자신이 직접 그 일을 수행할 수밖에 없음을 한탄했다고 한다. 그의 동료는 브리지먼과의
대화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내가 의사에게 끝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 말일세.” 이 말을 바꿔보면 결국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알아서 끝낸다는 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희망’이라는 말은 매우 추상적이다. 그러하기에 희망은 각기 다른 시간과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개인에게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단순한 단어라기보다는 하나의 난해한 개념이다.
의사들은 승리를 해야 만족하는 사람들이다. 승리하기 위해 우리 의사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학위를 따고, 힘든 수련 과정을 거쳐 자신의 입지를 다진다.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똑같이 의사들도 자신의 능력을 재확인
하고 점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성공만 아는 의사가 쓰디쓴 실패를 맛볼 경우, 그 의사의 자야는 ‘의사’라는 가장 이기적인 직업 세계에서 낙오되고 부서져 내릴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의사들이 갖고 있는 보편적 특질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 합당하고 합리적인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어느 선을 넘어버릴 때, 다시 말해 통제력이 사라지게 될 때, 의사들은 자신의 무능력이 양산해낸
결과를 두려움으로 받아들인다. 통제력을 유지하기 위해, 의사들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환자들보다 돌아가는 상황을 더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한다. 전혀 강요한다는 의식 없이 자신이 옳다고 믿는 대로 일단
결정내리고, 그 결정을 환자들이 받아들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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