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자 – 로베르트 발저 작품집, 로베르트 발저, 한겨레출판, 2017(초판4쇄)
사무실에서 있으면 내 사지는 서서히 사람들이 불을 붙여 태우고 싶어지는 그런 나무토막으로 변해간다. 책상과 인간은 시간이 흐르면 한 몸이 된다.
내가 아는 한 시인은 정말로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시를 썼는데, 그는 한동안 어떤 부인의 욕실에서 살았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에게 묻고 싶어지는 것이, 부인이 목욕을 하러 욕실로 들어올 때마다 그가 과연 예의 바르게 적절한 타이밍에 욕실 밖으로 나갔는지 하는 것을 말이다.
소녀들은 시선을 끌고 싶을 때 머리를 매만지는 행동을 한다. 그것은 유혹에 마음과 시간을 빼앗겨보라는 세련된 독촉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소란을 피우는 사람에게는 소란이 흥겨운 일이다. 나도 경험이 있어서 잘 안다. 야단법석을 피우고 있으면 자신이 뭔가 썩 대담한 일을 하는 것만 같다.
아마도 양탄자를 손질하는 소리 같다. 나는 저렇듯 아무렇지도 않게 두들겨 맞으면서 단련되는 것들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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