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데우스, 유발 하라리, 김영사, 2018(1판 43쇄)
하지만 미래에는 북한이나 이라크 같은 나라가 논리폭탄으로 캘리포니아를 정전시키고, 텍사스의 정유공장을 폭파하고, 미시간에서 열차 충돌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논리폭탄logic bomb’은 평화 시에 심어두고 원거리에서
작동하는 악성 소프트웨어 코드이다. 미국과 그밖에 많은 나라의 중요한 기반시설을 제어하는 네트워크에 이미 이런 악성코드가 심어져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테러범들은 끔찍한 폭력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우리의 상상력을 사로잡고, 우리로 하여금 중세의 혼돈 속으로 뒷걸음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따라서 국가들은 종종 테러리즘의 연극 효과에 안보 쇼로 대응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고, 국민을 억압하거나 다른 나라를 침공하는 등 힘을 대대적으로 과시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테러리즘에 대한 이런 과잉반응은 자국의 안보에 테러범들보다 훨씬 더 큰 위험이 된다.
테러범들은 도자기 가게를 부수려는 파리와 같다. 파리는 힘이 없어서 찻잔 한 개도 움직이지 못한다. 그래서 황소를 찾아내 그 귓속에 들어가 윙윙거리기 시작한다. 황소는 공포와 화를 참지 못해 도자기 가게를 부순다. 이것이 지난
10년 동안 중동에서 일어난 일이다.
사람들이 죽음을 피할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삶에 대한 욕구는 예술, 이념, 종교라는 덜거덕거리는 수레 끌기를 거부하고 눈사태처럼 돌진할 것이다.
생명과학에 따르면, 행복과 고통은 단지 그 순간에 어떤 신체감각이 우세한가의 문제이다. 우리는 외부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감각에 반응할 뿐이다. 사람들은 실직해서, 이혼해서,
전쟁이 일어나서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다. 사람들을 비참하게 만드는 유일한 것은 몸에서 일어나는 불쾌한 감각이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각이 덧없고 무의미한 동요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 우리는 그런 감각에 더 이상 끌려다니지 않게 된다. 생기자마자 사라지는 것을 뭐하러 뒤쫓는가?
2015년 초스웨덴 소톡홀름의 첨단기술 산업단지 ‘에피센터’에 근무하는 직장인 수백 명은 마이크로칩을 손에 이식했다. 쌀알만 한 크기의 이 칩에는 개인 보안정보가 저장되어 있어서, 직원들이 손을 흔들면 문이 열리고 복사기가
작동한다. 이들은 조만간 같은 방식으로 결제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와 같은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생명공학으로 무엇을 할까?’라는 질문에는 여러 가지 현명한 대답이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와 전혀 다른 종류의 마음을 지닌 존재가 생명공학으로 무엇을 할까?’라는 질문에는 쓸 만한 대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무한성장에 기반한 경제에는 끝나지 않는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불멸, 행복, 신성은 이러한 프로젝트로 안성맞춤이다.
2015년 2월 3일 영국 의회는 이른바 ‘세 부모 배아’법을 통과켰고, 그 결과 영국에서 이 치료와 관련 연구가 허용되었다. 현재 핵 유전자를 바꾸는 것은 기술적으로나 법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기술적 문제가 해결되면 결함 있는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대체 시술을 찬성한 논리에 따라 핵 유전자에도 같은 시술이 이루어질 것이다.
과학계에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에 부응해, 2015년 5월 뉴질랜드는 세계 최초로 동물이 감응적 존재임을 법적으로 인정한 국가가 되었다. 이때 뉴질랜드는 동물복지에 관한 수정조항을 통과시켰다. 이 수정조항은 동물을 감응적 존재로
인정하고, 그에 따라 축산업에서 동물들의 복지에 적절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명시한다.
문자언어는 실제를 기술하기 적당한 방법으로 생겨났지만, 서서히 실제를 고쳐쓰는 강력한 방식이 되었다. 공식 보고서가 객관적 실제와 충돌할 때 물러나야 하는 것은 대개 객관적 실제였다. 조세 당국이나 교육부서 같은 복잡한 관료
조직을 상대해본 사람이라면 진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서식에 적힌 내용이 훨씬 더 중요하다.
더 중요한 사실은, 과학이 잘 작동하는 제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종교의 도움이 항상 필요하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연구하지만, 인간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과학적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은 우리에게 인간이 산소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하지만 범죄자들을 질식시켜 처형해도 괜찮은가? 이런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 과학은 알지 못한다. 종교만이 이런 질문들에 필요한 지침을 제공할 수 있다.
근대사를 과학과 종교 사이의 투쟁으로 그리는 것은 관계처럼 되어 있다. 이론상으로 과학과 종교는 둘 다 다른 무엇보다 진리에 관심을 두지마, 각기 다른 진리를 지지하므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과학도
종교도 진리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서, 둘은 쉽게 타협하고 공존할 수 있는 것을 눔론 협력도 할 수 있다.
종교는 다른 무엇보다 질서에 관심이 있다. 종교의 목표는 사회 구조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다. 한편 과학은 다른 무엇보다 힘에 관심이 있다. 과학의 목표는 연구를 통해 질병을 치료하고 전쟁을 하고 식량을 생산하는 힘을 획득하는
것이다.
사실 근대는 놀랍도록 간단한 계약이다. 계약 전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이다. 즉 인간은 힘을 가지는 대가로 의미를 포기하는 데 동의한다는 것이다.
행복한 결말도 슬픈 결말도 존재하지 않는다. 실은 어떤 결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어떤 일들이 차례로 일어날 뿐이다.
싱가포르는 효율적인 도시국가답게 이런 사고를 더욱 극단으로 끌고 가, 장관의 연봉을 GDP에 따라 지급한다. 싱가포르 경제가 성장하면, 마치 그것이 그들에데 주어진 임무인 듯 정부 각료들의 연봉을 인상한다.
영혼은 존재하지 않고 인간에게는 ‘자아’라고 불리는 내적 본질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자아가 어떻게 욕망을 선택하는가”라는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것은 미혼 남성에게 “당신의 아내는 어떻게 옷을 고르는가?”라고
묻는 것과 같다. 현실에는 의식의 흐름만 존재하고, 욕망은 그 흐름 안에서 생겨났다가 사라질 뿐이다. 욕망을 소유하는 불멸의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척 복잡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이 개념을 검증하는 것은 놀라울 만큼 쉽다. 당신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갑자기 떠오르거든 이렇게 자문해보면 된다. ‘내가 왜 이 생각을 했을까? 이 생각을 하겠다고 1분 전에 결정하고그런 다음에
생각했나? 아니면 내 어떤 지시나 허가 없이 그 생각이 그냥 떠올랐나? 내 생각과 결정의 주인이 실제로 나라면, 다음 60초 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않겠다는 결정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할 수 있는지 한번 해보라.
우리가 아는 한 로봇 쥐는 다른 누군가가 자신을 통제하고 있다고 느끼지 않고, 자기 의지에 반하는 일을 강압적으로 하고 있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탈와르 교수가 리모컨을 누르면, 그 쥐는 왼쪽으로 움직이고 싶어져서 왼쪽으로 움직일
뿐이다. 교수가 다른 스위치를 누르면, 그 쥐는 사다리를 오르고 싶어져서 사다리를 오른다 .따지고 보면 쥐의 욕망이란 것은 뉴런 발화의 한 패턴일 뿐이다. 뉴런의 발화가 다른 뉴런들의 자극 때문이든 탈와르 교수의 리모컨에 연결된
전극 때문이든, 그것이 뭐가 중요한가? 당신이 그 쥐에게 이 문제에 대해 묻는다면, 쥐는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물론 나에겐 자유의지가 있어! 잘 봐, 나는 왼쪽으로 돌고 싶으면 왼쪽으로 돌아. 사다리를 오르고 싶으면 오르고. 이게
바로 나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증거 아니야?”
사람드은 단지 테러범들을 더 능숙하게 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유주의 세계의 일상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신들의 뇌 회로를 조작할 것이다. 즉 그런 조작을 통해 공부와 일을 더 효율적으로 한다든지, 게임과 취미에 더
몰입한다든지, 수학이나 축구 등 특정한 순간의 관심사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조작이 일상화되면 고객의 자유의지라는 것도 우리가 구매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제품이 될 것이다. 피아노를 능숙하게 치고 싶은데, 연습할
시간만 되면 텔레비전을 보고 싶다고? 문제 없다. 헬멧을 쓰고 해당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면, 피아노를 치고 싶어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이다.
정부만 이런 덫에 빠지는 것이 아니다. 기업들도 실패한 사업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개인들도 파탄 난 결혼생활과 앞날이 보이지 않는 직업에 매달린다. 이야기하는 자아는 과거의 고통이 무의미했음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미래에도 계속 고통을 겪는 쪽을 택한다. 내 이야기하는 자아가 지난날의 실수를 인정하려고 할 경우, 줄거리에 반전을 꾀해 실수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자기만의 장르를 갖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비극 속에 살고, 어떤 사람들은 끝없이 계속되는 종교극 속에서 산다. 어떤 사람들은 마치 액션영화처럼 살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희극처럼 살아간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결국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생명과학은, 개인이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는 생각은 생화학적 알고리즘들의 집합이 지어낸 허구적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주장으로, 자유주의를 뿌리째 뒤흔든다. 뇌의 생화학적 기제들이 한 순간의 경험을 일으키고, 그런 경험은
일어나는 순간 사라진다. 그런 다음 또 다른 순간적 경험들이 재빠르게 이어서 일어났다가 사라진다. 이런 순간적 경험들이 모두 더해져 지속되는 본질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야기하는 자아는 끝이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어 이 혼돈
에 질서를 부여하려 한다.
무인 드론과 시이버 바이러스를 갖춘 첨단부대가 20세기의 대규모 군대를 대체하고 있고, 장군들은 중요한 결정을 점점 더 알고리즘에 위임한다… 네부카드네자르 시대부터 사담 후세인 시대까지, 수맣은 기술적 개선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유기체의 시간 척도에서 치러졌다. 논의는 몇 시간 동안 지속되었고, 전투는 며칠 연속으로 치;러졌고, 전쟁은 수년을 끌었다. 하지만 사이버 전쟁은 단 몇 분 동안 치러질 것이다.
실제로 암 진단 같은 비교적 좁은 분야를 전공한 의사들을 대체하기는 훨씬 더 쉽다. 예컨대 최근에 실시한 한 실험에서 컴퓨터 알고리즘은 제시된 폐암 사례들 가운데 90퍼센트를 정확하게 진단한 반면, 인간 의사들의 성공률은 50
퍼센트에 그쳤다.
약사들에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2011년, 로봇 한 대가 운영하는 약국이 샌프란시스코에 문을 열었다… 운영 1년 만에 그 로봇 약사는 200만 건을 조제했고, 단 한 건의 실수도 저지르지 않았다. 인간 약사들이 약을 조제할 때
일으키는 실수는 평균 1.7퍼센트이다. 이로 인한 조제 오류가 미국에서만도 매년 5,000만 건 이상에 이른다!
몇몇 고객 서비스 부서들에서 이런 생각을 이미 실행에 옮기고 있다. 시카고에 본사를 둔 매터사이트 코퍼레이션Mattersight Corporation이 개발한 새로운 프로그램이 그 예이다… 당신이 전화한 이유를 말하면 알고리즘이 요구사항을
잘 듣고, 당신이 선택한 단어들과 어주를 분석해 당신의 현재 감정 상태뿐 아니라 성격 유형까지 유추해낸다. 알고리즘은 이 정보에 기반해 당신의 기분과 성격에 가장 잘 맞는 상담원을 골라 연결해준다. 알고리즘은 당신이 불평을 인내심
있게 들어주는 감정이입형 유형을 필요로 하는지, 아니면 가장 빠른 해결책을 제시하는 싱용적이고 이성적 유형을 필요로 하는지 안다.
앞으로 사람들은 스스로를 자기 소망에 따라 인생을 운영하는 자율적인 존재로 보는 대신, 네트워크로 얽힌 전자 알고리즘들의 관리와 인도를 받는 생화학적 기제들의 집합으로 보는 데 점점 익숙해질 것이다. 나를 완벽하게 알고
어떤 실수도 하지 않는 외부 알고리즘까지 갈 필요도 없다. 그저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실수를 덜 하는 외부 알고리즘이면 충분하다. 그 정도면 알고리즘에게 나에 관한 점점 더 많은 결정과 인생의 선택들을 맡기기에 충분할 것이다.
‘데드라인Deadline’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재의 습관을 토대로 당신이 앞으로 몇 년을 더 살지 알려준다.
유럽 제국주의의 전성기에 스페인 정복자들과 상인들은 색깔 있는 구슬들을 주고 섬과 나라를 통째로 샀다. 21세기 대부분의 사람들인 여전히 가지고 있는 값진 자료는 아마 개인적 데이터베이스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겨우
이메일 서비스와 웃긴 동영상을 제공받는 대가로 첨단 기술기업에게 그 데이터를 넘기고 있다.
예컨대 두려움의 냄새와 용기의 냄새는 다르다. 한 남자가 두려워할 때, 그는 용기로 충만할 때와는 다른 화학물질들을 분비한다. 만일 당신이 이웃 무리와 전쟁을 할지 말지 논쟁하고 있는 원시인 무리 사이에 앉아 있다면, 말 그대로
여론의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인류는 소외공포를 앓고 있고, 우리는 전보다 선택의 여지가 많아졌지만 선택한 것에 실제로 집중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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