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사슴, 한강, 문학동네, 2018(전자책 발행)
내 눈에서 격렬한 눈물이 뿜어져나오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얼굴이 오래된 귤껍질같이 오그라들기 시작했다.
힘을 가진 큰 것들이 힘없이 작은 것들을 먹고 마시는 동안 …… 그런 것들은 결코 변하지 않겠죠. 오히려 점점 심해지겠죠.
그때 이후로 나는 보는 눈뿐 아니라 기록할 수 있는 눈을 함께 가지게 되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밀려왔다가 밀려나가고 있었으며 내가 죽은 뒤에도 그 거대한 움직임을 계속 할 바다를 바라보다보면, 마치 접신과 같은 지점을 만나게 되기 마련이다.
자신보다 먼저 학교에 가는 언니들이 차지해버릴까봐, 밤이면 구멍 나지 않은 양말을 몰래 가슴에 품고 자던 명아였다.
이제 명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만일 누이가 고통받고 있다면 왜 그에게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가 하는 어리석은 의문이었다. 어째서 그의 육체는 이다지도 편안하며, 심지어 시간이 흐름과 함께 누이의 존재를 잊고 지내기까지
하는가.
그는 입에 머금은 사탕을 오래 아껴서 빨듯이 의선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천천히 굴렸다.
철들 무렵부터 그의 꿈은 그런 것이었다. 언제가 그는, 자신의 발이 도저히 닿지 않을 만큼 사이가 벌어진 절벽과 절벽 사이를 뛰어서 건너고 싶었다. 그러다 살거나 그러다 죽고 싶었다.
그때 의선의 쇠약한 나신이 햇볕에 뻘뻘 흘러내리는 것을, 복숭아색의 끈끈한 액체가 보도블록에 고이는 것을 본 것 같은 착각에 나는 몸을 떨었다.
나는 상처받기에는 아직 어렸던 것이다.
나는 외로움이 좋았다. 외로움은 내 집이었고 옷이었고 밥이었다. 어떤 종류의 영혼은 외로움이 완성시켜준 것이어서, 그것이 빠져나가면 한꺼번에 허물어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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