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문학동네, 2015(전자책 발행)



 

 ‘세상과 전면적인 관계를 맺고 싶지는 않다’가 내 초기 상태다.



 인간에게 있어 타인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최고의 유용한 자원이다.



 그의 말을 빌리면 “유전자 전달이라는 목적은 태어남 자체로 이루었으니 인생은 보너스 게임, 산책하러 나온 거다.”



 남들에게 인정받고자 치열한 인정투쟁을 벌이는 와중에 자신을 잃어가는 아수라장을 쉽게 관찰할 수 있는 곳이 SNS 공간이라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한 가지 중요한 행복의 메커니즘은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것이다.



 행복에 관한 과학의 연구 결과 중 가장 씁쓸한 진실은, 개인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요소는 유전적인 외향성, 사회성이라는 점이다. 타고나길 남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사람 중독증 환자들이야말로

행복해지기 쉬운 우월한 유전자를 타고난 것이다. 



 내성적인 이들은 외향적인 이들과 마찬가지로 사람과의 관계에서 행복을 느끼지만 적절한 거리가 유지되어야 행복을 느끼는 체질인 것이다. 미각이 지나치게 예민해 강한 맛의 음식에는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개미 연구로 유명한 진화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평이 정확하다. “이론은 훌륭한데 종이 틀렸다.”



 무엇보다 서구 민주주의는 인간성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결국 취업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는 자기통제형 자기계발에 매진하는 이십대는 상상을 초월하는 박탈감과 불안감 속에서 사회적 약자의 고난을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돌리며 자신은 그래도 노력하고 있기에 그들보다는 낫다고

구분짓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이십대들의 고통을 이해해주지 않기 때문에 이들도 그 누구의 고통도 이해할 수 없게 된 것이기도 하다.



 그 배후에는 ‘타인의 상승’을 원천보오새하겠다는 의지가 있다.



 일본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가 이십대 시절에 쓴 책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실제로 오늘날 일본 젊은이들의 행복지수는 근래 40년 중 최고치란다.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의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황현산 선생의 글이다.



 사람이 사람을 살해하는 주된 동기는 과연 무엇일까. 재판 경험에 비춰보면 의외로 ‘자존심’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누군가 나에게 한사코 권하는 것은 그 누군가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고, 나에게 이익이 되는 일은 남들이 한사코 감추고 있는 게 세상의 비정한 이치다.



 실제로 의미 있는 변화를 도출하는 것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 열광적인 환영을 받는 과격한 목소리들이 아니다. 이는 오히려 반대 의견을 가진 집단의 반발과 결속만 강하게 만들어 의견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뿐이다.

한 진영 내부에 생기는 작은 균열에서 변화의 지점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 균열을 만드는 것은 같은 진영 내의 온건하고 합리적인 사람들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작고 부드러운 ‘다른’ 목소리들이다. 



 판을 흔드는 아이디어를 불쑥 내는 부하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성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관리자들이 할 일이다. 그게 부담스러운 관리자는 무능한 거니까 그쪽이 나가야 하고.



 구체적으로 무슨 이념과 무슨 이념이 대립한다는 것일까? 정말 우리나라에 공산주의자와 파시스트들이 스페인내전 때처럼 대립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나라 양대 정당이 이념정당인가? 두 정당의 공약집을 표지 가리고 읽어서

구분하기란 펩시 챌린지 이상의 도전이다. 



 경제학이란 참 잔인할 정도로 깔끄한 학문이다. 비루하고 때로는 피비린내까지 나는 인간들 행동의 인센티브를 아주 무색부취하고 명쾌하게 정리해주니까.



 이야기를 듣다보니 미국 인구분포로 볼 때 서민층이 훨씬 많은데도 공화당이 집권하는 이유의 일부를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공화당에 투표하는 유권자들의 다수는 미국 중부, 남부의 백인들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자신들은 주말이면 교회에 가고, 검소하고 소박한 삶을 살면서 근면하게 일하며 살아왔다. 정부가 자신들을 위해 무슨 대단한 일을 해줄 것을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정부가 자꾸 세금을 많이 걷어서 게으름뱅이, 마약쟁이,

범죄자, 불법이민자들을 먹여 살리려고 한다. 게다가 옆집까지는 한참 떨어져 있는 시골집에 미치광이나 강도라도 나타나면 내 사랑하는 가족을 지킬 것은 내 총밖에 없는데, 이것을 빼앗아가려고 한단다.



 냉소적으로 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어 Anyone can be cynical.

 담대하게 낙관주의자가 되라구 Dare to be an opti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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