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할 땐 뇌과학, 앨릭스 코브, 도서출판푸른숲, 2019(첫판 13쇄)


 



 기분장애를 전문으로 다루는 신경과학자로 일하면서 나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에게나 우울 성향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뇌가 그런 성향에 빠지기 쉽게 배선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세로토닌계는 세로토닌을 방출하거나 세로토닌에 반응하는 모든 뉴런이다. 



 우울증은 뇌 회로 간 의사소통의 문제다.

 이제 우리는 우울증이 전두-변연계의 의사소통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것 그리고 뇌 회로의 특정한 조율 양상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가 그중 한 회로의 조율을 아주 조금만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



 걱정이나 불안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면 정말 좋겠지만 우리 뇌는 그렇게 배선되지 않았다. 계획을 세우고 문제를 해결하며 의사를 결정하도록 돕는 회로들이 우리를 걱정으로 몰아가는 바로 그 회로들이다. 위험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회로들은 불안을 야기하는 회로들과 동일하다. 



 그렇다면 계획 세우기와 걱정의 차이는 무엇일까? 사실 차이라고는 내측 전전두피질과 전방대상피질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자기지향적 처리의 ‘양’뿐이다. 즉 이 영역들이 미래의 잠재적 시나리오에 ‘얼마나’ 감정적으로 맹렬히 

반응하는가의 차이인 것이다. 



 불안한 상태는 변연계의 활동이 과도해져 부정적인 감정의 볼륨을 한껏 높여둔 상태라 할 수 있다. 이때는 변연계의 고함 소리가 전두-변연계의 정상적인 대화 소리를 압도하기 때문에 단순한 계획을 세우는 일도 어려워진다.



 “나의 삶은 끔찍한 불행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중 대부분은 일어나지도 않은 불행이었다.”



 불행히도 사람의 뇌는 부정적인 일에 더 강렬하게 반응한다. 아무래도 부정적인 사건이 긍정적인 사건보다 무게감이 더 큰 모양이다. 5달러를 잃어버렸을 때 느끼는 짜증이 5달러를 찾았을 때 느끼는 기쁨보다 크다. 



 다른 신체감각과 달리 통증에는 감정의 성분이 있다. 우리는 통증을 객관적으로 지각하는 것(‘어, 손이 차 문에 낀 모양이야’)이 아니라, 통증이 느껴지면 저절로 감정적으로 반응하게(‘이 $#%^할놈의 차 문!%#%^하게 아프네!’) 된다.

사실 감정이야말로 통증을 통증감각으로 만드는 주요 성분이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똑같이 난로에 손을 덴다면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아픔을 더 심하게 느낀다.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음식을 먹거나 볼 만한 게 없는데도 계속 텔레비전을 본 적이 있는가?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행동은 우리가 거기서 전혀 즐거움을 얻지 못하는데도 실행하는 것이므로 종종 하강나선을 초래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측좌핵은 더 이상 반응하지 않고 중독은 더 이상 쾌락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이미 배측 선조체에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에 쾌락이 느껴지든 말든 또 한 잔의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고, 한 개비의 담배를 피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도피만의 이러한 변화 때문에 중독은 우울증에 걸릴 위험을 높이고 우울증은 중독될 위험을 높인다.



 피로는 우울증의 흔한 증상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전전두의 기능 이상(세로토닌이 감소해 계획 세우기와 결정 내리기가 지지부진해지는 것)과 배측 선조체의 활동 감소가 모두 피로의 원인이다.



 처음에는 그저 먹겠다는 충동이었으나 이윽고 무의식적인 반복 행동으로 깊이 각인되었다. 일단 그렇게 각인되면 그 행동에는 더 이상 쾌락이 따르지 않고 주의를 기울일 필요도 없어지지만, 그럼에도 미친 듯이 돌아가는 세상에서

여전히 일말의 통제감을 안겨준다.



 물론 운동할 기분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건 우울증에 빠진 당신의 뇌가 하는 말일 뿐이다.



 앉아 있는 것은 새로운 종류의 흡연이다. 앉아 있는 것이 그만큼 나쁘다는 말이다.



모든 걸 해결하는 단 하나의 해결책은 없다. 해결책을 이루는 부분들이 있을 뿐이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의 상황이 아마 딱 이와 같을 것이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모두 다 잘못될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런 느낌이 드는 이유는 단지 변연계가 전전두피질을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선의 결정이 아니라 그럭저럭 괜찮은 결정을 내려라.



 사람은 뇌의 10퍼센트만 사용한다는 말을 누구나 들어봤을 것이다. 얼토당토않은 거짓말이다. 누구나 자신의 뇌를 전부 다 사용한다. 비록 뇌가 너무 많은 양의 무의미한 정보를 처리하고 있을 땐 진짜 중요한 일을 처리할 힘을 

빼앗기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떤 목표를 정하고 결심하면 전전두피질은 뇌의 나머지 부분들이 세계를 인지하는 방식을 바꾼다. 너무 심오한가? 쉽게 말해서 목표를 정해 결심하면 전전두피질이 우리가 논앞의 세계를 보고 듣고 냄새 맡는 방식을 변화시킨다는

말이다. 뇌의 고위급 처리 과정인 전전두피질의 의사결정은 하위의 감각 처리에 영향을 미친다.



 자신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파악하라. 생활에서 무의미한 세부 정보들을 줄이려면 자신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자신의 가치관에 초점을 맞추면 뇌의 스트레스 반응이 줄어든다는 것을 여러 연구가 밝혀낸 바 있다.



 대개 우리는 좋은 일이 일어날 때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가장 큰 행복을 느낄 때는 특정한 목표를 추구하기로 결심하고 그 목표를 달성했을 때다.



 원하지 않는 것을 피하는 결정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결정을 내려라.



 때로 기분이 정말 엉망이고 인생을 다 망쳤다는 생각이 들 때, 그것은 단순히 일주기 리듬이 우리의 기분을 바꿔놓은 결과인 경우도 있다. 일주기 리듬을 완전하게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다른

방법으로 상승나선을 가동시키거나 그 기분이 지나가기를 두어 시간만 기다리면 된다는 것을 알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



 저술가이자 그래픽노블 작가인 닐 게이먼은 2012년에 한 졸업식 연설에서 아주 예리한 말을 했다. “당신이 실수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세상에 나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살아야 할 이유를 갖고 있는 사람은 살아가는 거의 모든 방식을 견뎌낼 수 있다.” 장기 목표가 있으면 그 이유가 생긴다.



 이 장에서는 바이오피드백biofeedback, 곧 몸이 하는 일에 따라 뇌의 활동이 달라진다는 단순한 사실을 다룬다. 요가는 그저 의식적인 바이오피드백을 통해 뇌의 변화를 촉진하는 하나의 예일 뿐이다.



 배가 고픈 건가, 스트레스를 받은 건가? 감정적인 감각은 그리 엄밀하지 않기 때문에 뇌가 잘못 해석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보톡스 치료를 받은 사람 가운데 불안이 줄어든 경험을 한 경우가 많은데 이는 단지 그들이 불안감에 상응하는 얼굴 표정을 지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뇌에는 감사 회로가 있는데, 이 회로는 심각한 운동 부족 상태다. 감사 회로를 튼튼하게 만들면 육체 및 정신의 건강이 향상되고, 행복이 커지며, 수면이 개선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더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감사는 실제로 자살을 생각할 가능성을 줄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여러 연구 결과가 자기보다 못한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에는 감사처럼 이로운 효과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감사는 자신이 가진 것들의 가치를 실제로 음미하는 데서 오는 감정이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가졌는지 갖지 못했는지는 상관 없다.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외로움이 없으면 더 외로울 것이다”라고 썼다. 그녀는 혼자 지낸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러면서도 혼자 있는 것을 늘 두려워했다. 사실 흔히 볼 수 있는 이 명백한 역설은 친밀함을 가장 강렬히 원하는 사람이 

대체로 거부에 가장 예민하기 때문에 생긴다.



 옥시토신이 친밀한 감정을 강화해주기는 하지만, 부모와 가졌던 관계를 그 바탕으로 삼는다… 부모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던 사람은 뇌가 친밀한 관계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을 보일 수 있다.



 우리는 종종 부정적인 감정은 느끼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면 밀어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런 방법으로는 부정적인 감정이 해소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좌절감만 더 깊어진다. 반면 받아들임은

내가 느끼는 감정이 단지 느낌일 뿐이라고 가르친다. 그 자체로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찌그러진 여해 가방은 다시 길 위에 나와 쌓여 있고, 우리에게는 앞으로 갈 길이 더 많이 남았다. 그러나 상관없다. 길이 바로 인생이니까. 

  - <길 위에서>, 잭 케루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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