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기쁨과 슬픔, 장류진, (주)창비, 2019(전자책 발행)
내성적인 개발자는 대화할 때 자기 신발을 보고 외향적인 개발자는 상대방의 신발을 본다더니. 이 세계에서 레고 동호회란 대체 뭐란 말인가. 크레이지 파티광쯤 되는 건가.
- <일의 기쁨과 슬픔>
나에게 아이는 마치 그랜드 피아노와 같은 것이었다. 평생 들어본 적 없는 아주 고귀한 소리가 날 것이다. 그 소리를 한번 들어보면 특유의 아름다움에 매혹될 것이다. 너무 매혹된 나머지 그 소리를 알기 이전의 내가 가엾다는 착각까지
하게 될지 모른다. 당연히,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임감 있는 어른,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그걸 놓을 충분한 공간이 주어져 있는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집 안에 거대한 그랜드 피아노를 들이기 전에 그것을 놓을 각이
나오는지를 먼저 판단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부족해도 어떻게든 욱여넣고 살면서 살아진다는 것도 알고 있다. 물론 살 수는 있을 것이다. 집이 아니라 피아노 보관소 같은 느낌으로 살면 될 것이다. 그랜드 피아노가 거실 대부분을
차지하게 될 테고 패브릭 소파와 소파스툴, 원목 거실장과 몬스테라 화분은 둘 엄두도 못 낼 것이다. 거실을 통해 부엌으로 가려면 한가운데로 가로지르지 못하고 발뒤꿈치를 들고 피아노의 뒷면과 벽 사이로 겨우 지나가거나, 기어서
피아노 밑을 통과해야 할 것이다. 우리 부부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충분하다거나 여유롭다는 기분으로 살아본 적 없는 삶이었다. 삼십대 중반, 이제서야 비로소 누리게 된 것들을 남은 인생에서도 계속
안정적으로 누리며 살고 싶었다.
- <도움의 손길>
입력창이 뚫려 있는 곳이면 어디든 누구든 배설하듯 글을 토해낼 수 있었다. 깜빡이는 커서가 들어갈 수 있는 구멍, 그곳에 되는대로 입력하고 엔터키를 누르면 그대로 활자가, 단어가, 문장이 되었고 일초에도 수만명의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에 아무렇게나 나뒹굴며 노출되었다. 스스로 혹은 누군가 치우기 전까지 그 글은 어떤 형태든 어떤 내용이든 서버 어딘가에 화석처럼 박혀 썩지 않고 고이 남아 있을 것이었다.
-<새벽의 방문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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